경찰 서울대투입서 철수까지 39시간|"소닭보듯"…충돌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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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철수요청 단독보도>서울대총장의 경찰철수 요청은 25일 하오l시 정식공문으로 작성돼 관악경찰서 박일용서장에게 발송됐다.「경찰병력 철수요청」이란 제목의 이 공문(사본)은 갈가리 찢겨진채 학교관계부서 사무실휴지통에서 중앙일보취재팀에 발견돼 단독 보도됐다.

<「연행학생협의」 연막>
○…경찰이 캠퍼스에 진입한 가운데 산발적으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가 가라앉은 25일 하오4시쯤 총장실을 방문한 김정웅 시경 제1부국장과 안희상 제2부국장·박일용관악경찰서장은 경찰철수절차와 학교의 대책 등을 논의했으면서도 끝내 『연행학생 처리문제를 협의했다』고 연막을 피웠다.
○…경찰철수 소문이 무성하게 퍼진 가운데 25일하오6시30분쯤부터 경찰 수송버스가 빈차로 서서히 교정으로 진입, 철수시간이 임박했음을 암시.
이 시간에 이미 사복경찰은 교문쪽 버스에 승차해 출발을 대기.
출발 H아워인 하오7시30분쯤엔 조명차가 정문쪽 도로를 휘황하게 비추며 준비완료 신호를 보냈으나 대학측의 담화문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철수가 20분쯤 늦춰졌다.
○…경찰의 철수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하오8시5분쯤 김정웅시경제1부국장과 박일룡관악서장·박수영시경경비과장은 이현재총장을 방문, 작별인사를 나눴다.
총장실을 나온 김부국장등은 후련한듯 발걸음이 가벼웠고 이총장은『그동안 수고많았다』며 환한 웃음으로 총장실 문밖까지 경찰간부를 배웅.
○…25일하오 서울대 투입경찰병력의 철수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그 많은 병력을 떠들썩하게 투입해서 경찰이 얻은게 뭐냐』며 자성론이 일기도.

<버스에 실어 연행해>
○…대규모 경찰병력이 투입되어 있는데도 25일하오 교내곳곳에서 서울대생들의 시위가 발생하자 경찰간부들은 매우 낭패한 표정.
경찰투입을 앞두고 『교내에서 결코 학생을 연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시경의 고위간부는 철수를 앞두고 2백여명을 연행한데 대해 괴로운 표정으로『오늘밤 안으로 모두 돌려보낼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연행이 아니다』라며 설명.
이때문에 현장의 겅찰관들도 처음에는 시위학생을 검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해산시키려 했으나 포위된 학생들이 주저앉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버스에 실어 연행했다.

<방송통해 자중호소>
○…경찰병력이 진입한 가운데 25일하오 교내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학교측은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중할 것을 호소.
하오2시3분 본관5층 네귀퉁이에 설치된 8개의 대형스피커로 강신택교무처장은『시험이 끝난 학생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라. 지금 기초교과과정 시험이 진행중이다』고 4차례에 걸쳐 방송을 했고 하오2시55분에는『내일부터 정상수업이 실시되니 일찍 귀가하라』고 종용.
○…시위가 끝난 다음 도열해있는 경찰들 옆을 지나는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다음에 또 봅시다』는 등의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병력 철수때는 박수영시경경비과장이 마이크로『학생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라』고 지시까지 했으나 손을 흔드는 경찰도, 학생도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강현창 서울시경국장은 서울대에 투입된 기동대 간부들에게 『교내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경찰은 끝까지 인내한다는 자세를 보여주라』고 특별지시.
강국장은 특히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욕설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등 다소 저항이 있더라도 경찰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반격은 절대로 하지말도록 당부. 그러나 전경대원과 서울대생간에는 한건의 충돌도 없었고 같은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도 서로「소 닭보듯」 해서 강국장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한때 계속 주둔 추측>
○…학교측이 서면으로 철수요청을 한후에도 시험종료시간인 하오5시 열릴 예정이던 학 처장회의가 다소 늦어지자 주위에선 이날 낮에 있었던 학생들의 시위 때문에 경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총장이 하오5시30분 굳은 표정으로 총장실을 나와 학·처장회의와 보직교수회의를 연달아 소집한뒤 『철수요청방침』을 발표할때까지 전혀 예측을 할수없어 마지막까지 진통했음을 읽을수 있었다.
○…경찰철수 후 대책을 위해 25일 하오 6시30분부터 대학본부 4층회의실에서 열린 서울대전체보직교수 회의에서는 학교측의 독단에 대한 일부 평교수들의 불만이 터져 진통하는 대학의 분위기를 짐작케했다.
일부 평교수들은 『23일 학·처장회의에서 시험응시 거부 학생들을 0점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은 교수의 고유권한을 침범한것』이라고 지적했고 『학원문제는 보직교수들만이 아닌교수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할 일인데 전체교수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수 없다』고 보직교수회의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이총장은 이에 대해 『성적처리가 교수 고유권한이라는데는 이의가 없지만 시험거부에 대한 응징에 형평을 기해야한다는 점에서 학·처장들이 그 문제를 논의했을뿐』이라며『보직교수만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은 상황이 급박했기때문』이라고 해명.

<신어「경찰부르시죠」>
○…서울대교수들은 이번 사태로 사제간 신뢰의 벽에 더한 금이가지 않았을까고 우려.
학생들간에는 『경찰을 부르시죠』라는 신조어가 생겨나 학교측에 야유어린 눈길을 보내는 가운데 24일상오 10시쯤 인문사회관 정치학과 사무실 앞에서는 모보직교수가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배구공을 가지고 동료들과 밖으로 나가려는 학생의 따귀를 때리자 이학생은 『교수님, 경찰이 와서 든든하시겠읍니다』라고 내뱉어 교수가 말을 잊고 망연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총장 철수후 떠나>
○…이현재서울대총장은 경찰병력이 캠퍼스를 모두 떠나고 1시간쯤 지난 하오9시25분쯤 총장실을 떠났다.
이총장은 비서실에서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과일접시를 직접 갖다주며『이제 그만가자』고 괴로운 표정을 지은뒤 경찰병력이 철수해 정적이 깃들인 교정을 나섰다.
이총장은 극도로 피로한 듯 어깨는 축 처져있었고 눈은 충혈돼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울대총장자리가 갖는 책임의 막중함을 느끼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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