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인소득 1,000불의 청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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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노다득, 소노소득.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이 벌고 게으른 사람은 적게 번다는 이러한 주창은 중공이 떠받들어왔던 사회주의경제의 골격을 허물었다. 기업경영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우열이 확연히 나타나고 직공들의 능력이 드러났다.
사회주의이념의 하나였던「인민의 평균화」를 서서히 퇴각시킨 주창이었다.
1980년1월16일 등소평은 중공지도자 치고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GNP(국민 총생산) 개념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중공이 대륙을 장악한 30여년 만에 처음있은 일이다.
그는 중공이 곧 소강사회 (비교적 여유있는 사회)를 이루게 될것이며 당이 추진하고 있는 현대화계획은 20세기말까지 1인당 GNP를 1천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등소평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GNP개념으로 그의 현대화정책목표를 설정한데 이어 문호개방을 확대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잇점을 도입했다.
농업과 경공업이 경시되고 인민의 생활수준을 밑바닥에서 헤어날수 없도록 만들었던 과거의「선생산·후생활」이라는 구호도 거꾸로 바꾸었다.「선생활·후생산」의 구호가 제기되었다.
인민의 생활개선이 목적이 되고 생산증대는 그 수단으로 강조된것이다.
홍 (공산주의사상파 정치)보다 전 (전문지식과 기술)이 중요시 된것도 이때쯤부터였다.
인구10억을 거느리고 있는 중공의 82년1인당 GNP는 대만의 경우 (인구 1천8백만명, 1인당 GNP 2천5백37달러) 에 비해 매우 적은 3백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생산청부제가 실시되면서 농업생산이 증가하고 도시주변의 농민은 자유시장에 물건을 팔아 소득을 늘리기 시작했다.「부자가 되는것은 나쁜것」이라는 가치관에서「수익을 올려 부자가 되는것은 좋은것」이라는 의식의 변화와 함께 부농이 공산당에 입당하는 일이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만원호」가 속속 탄생했다. 1년수입이 1만원 (우리나라 돈으로 약3백85만원) 을 넘는 문자 그대로 중공판 백만장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소득은 중공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의 30배에 해당한다.
82년말 현재 중공의 국영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8천6백30만명의 이른바 엘리트 근로자 임금은 1인당 평균 8백36원 (32만2천여원·연간총액·82년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지난52년의 4백46원(17만2천여원) 에 비해 30년동안 겨우 90여% 오른것이다. 그동안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중공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이보다 훨씬 더 내려간다. 이같은 저임금으로 도시근로자들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갔을까.
남편의 월급이 적기때문에 여성들이 생업전선에 나섰다. 말하자면 쌍직공이라는 부부맞벌이 형태의 가정이 늘어난것이다.
농촌의 부농들이 자유화정책에 따라 닭·돼지를 키우고 양어등 부업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것처럼 이번 도시경제 개혁으로 기업체 종업원들도 열심히 일한만큼 돈을 벌수있는 기대는 가질수 있다.
생산을 자극하는 경제정책의 추진과함께 식-의-문화생활 순서로 이루어졌던 중공사회의 소비구조가 문화생활-의-식의 순서로 점진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농촌과 도시가계의 소득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전반적으로 중공인들의 소득수준을 높일것으로 기대되는 경제체제개혁은 유고슬라비아나 헝가리등 동구제국의 경험이 많은 나라가 영향을 주고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이른바 시장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기업을 직접 자치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시장의 수요에 맞게 경제계획을 세우는 협상적계획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헝가리는 이윤을 얼마만큼 많이 냈느냐에 따라 기업경영의 성과를 평가하고 가격 자율화정책 (생필품제외)을 채택하고 있다.
중공의 신경제정책은 과거의 고속도·고지표를 추구하는 속성론적경제사상을 신랄히 비판하는데서 출발하고있다. 맹목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은 삼가겠다는 것이다. 국민소득도 점진적인 경제개혁으로 끌어올릴수 있을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질적자극을 중요시할수록 중공이 경계하는「부르좌 자유주의 사상」의 확산 (정신오염) 은 피할길이 없다. 그렇다고해서 모택동방식의 평등주의를 강조하면 빈곤의 평등을 건져낼수 없을것이다.
소득향상에 따라 중공인들의 생활양식과 사회풍조가 달라지고 이에 덩달아 우려할만한 현상이 범람하면 개혁의 선도자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것인가.
등소평은『부르좌 생활양식은 단연코 허락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일이 있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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