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의 프라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파리=주원상 특파원】파리의 르 몽드지는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체코시인 「야로슬라프·자이페르트」의 미발표 작품인 「눈속의 프라하」를 입수해 18일 번역 소개했다. 「눈속의 프라하」는 그가 81년에 발표했으나 체코국내 출판이 금지돼 서독에서 출간됐던 회상록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외 일부로 쓰여진 것이나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었다
다음은 작가의 지칠줄 모르는 조국애와 저항정신이 극명하게 표출돼 있는 「눈속의 프라하」 전문이다
프라하!
조국의 손바닥에 강가의 보석을 쥐어주는 우리의 수도.
모든 시인의 시집을 뒤진다 해도,
제아무리 아름다운 노래의 구절을 가져다 붙인다 해도,
컴컴한, 「울랑」의 말(언)의 동굴을 헤맨다해도,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식어를 나는 아마 찾아내지 못하리라.
우리들,
체코슬로바키아인은 마치 모두의 고향인것처럼, 이 도시를 사랑한다.
아니, 프라하는 우리의 고향이다.
버들가지 울타리와 맨처음 생겨난 요새의 해묵은 석벽이, 피로 얼룩졌던,
극적인 민족사의 길을 연 곳
길은 언제나 새롭게 이 도시로 돌아온다.
또한번 프라하의 돌들엔 피가 튀었다.
하기야, 어느 도시인들 다른 운명이였던가?
모두 모두 전쟁터였다.
어떤 도시들은 더 더욱 참혹한 운명을 견뎌내야 했다.
프라하는 우뚝 서있다!
운명은 벽 속에서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당의 역사에 위대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새로 보태기로.
시작 아니면 종말인 것을.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총탄이 발사된 것도 프라하의 거리에서였다.
그리고, 시간은 이 순간을 위해 도시를 부드럽게 장식했었다.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인 프라하.
고도라지만, 세상 어느 도시보다도 잘 보존됐고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
비길 데가 없는 곳.
오늘 우리는,
갑자기 백색으로 단장한 그와 만났다.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서, 서둘러 백설이 삼켜버린 세상을 바라보자.
12월의 어느 밤,
눈이 온통 프라하를 덮었다.
정녕 솜털은 아니었다.
나의 거리에서,
울타리를 따라가다, 우리는 1미터 높이의 눈더미에 쌓여 꼼짝 못하고 서있는 자동차를 보았다.
지붕 위에도 25센티 이상의 눈더미들,
노간주 나무들은 꺾여 있었고,
천창을 통해 나는 생기의 탑을 바라본다.
멀리, 그리고 때로는 짙은 안개 속으로.
묵직한 겨울 신발을 신고 나는 나섰다. 놓쳐서는 안되지, 나는 내게 말하면서 스타디움으로 가는 차도를 따라 성큼성큼 걷는다.
페트린 언덕에 다다랐을 때 눈들은 이미 얼마큼 밟혀져 있었으나 여전히 어찌나 곱고 깨끗했던지 나는 내 더러운 발자국을 찍기까지 한동안 주저했었다.
그러나 어쨌건 나는 프라하를 바라봐야 했다.
내가 미개인처럼 이 백설을 뚫고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던가.
게다가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내리자 마자 발자국을 없애주고 있었다.
눈덮인 프라하!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가.
물론 눈이 온통 도시의 색깔을 감춰 버리고 있었으나 도시가 덮여있는 것만큼 가슴은 더한 아름다움으로 죄어들였다.
눈이 덮어 버린 모든 것!
모든 것. 과거와 현재,
옛날 이야기와 짧고 분주한 실존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야기들
그리고 이 상상못할 침묵
생명은 비록 멈추지 않았으나,
영원한 소음 속에 묻혀 버렸다.
그것은 이상한, 형언키 어려운 침묵이었다.
우리는, 프라하의 모든 종들이 한꺼번에 울려 퍼졌던 순간들을 살았다.
이제 그 아름다움,
그 장엄함을 당신의 눈과 귀에 다시 담아 보라.
그리고 그 울림의 바로 반대를 상상해 보라.
내가 이야기하려 하는 이 엄숙한 침묵이 그런것이리라.
그러나 안돼, 아직은 그게 아니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