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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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하늘이 파랗게 높아만 지던 날, 중학생인 아들아이와 서점앞을 지나다가 이 풍요한 가을에 그애에게 책 한권을 권하고싶어 들어섰다.
셀수 없이 많이 쌓인 책, 유리문에 빈틈없이 나붙은 신간안내 광고를 보면서 마음대로 한권 골라 보라고 했다.
이것 저것 빼어보고 뒤적이더니 끝내 골라든 책은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란 책이었다.
그 책을 골라든 아이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기에 순간 나는 깡마르고 키만 큰 체구와 안경 낀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나올뻔 했다.
학과 공부외에 사색할수 있는 에세이나, 아니면 고전, 또는 위인전 그런걸 고르길 기대했였는데….
『공부해 라, 공부해 라….』
수없이 들어야 하는 그 말이 지겹기만 했을텐데 어느새 그 애의 머릿속엔 「공부」라는 의식으로 꽉 채워졌나 보다.
그러기에 한치의 낭만도 한 줄의 싯귀도 그 애 곁에 머무를 여유가없는걸까?
아들을 나무랄 수도 대신 읽어줄수도 없기에 안타깝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지금처럼 책이 흔하질 않았기에 다감하시던 아버님께서 사다주신 『산유화』가 우리반 아이들이 줄을 설정도로 인기였다. 누가 책 한 권 가지고 오면 다투어 먼저 읽겠다고 순번이 정해지니 다음 읽을 친구의 독촉에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속에서 책이 들락날락하다가 호되게 꾸중을 듣곤 했었다.
지금 아이들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책을 읽을 새가 없는 각박함 속에 산다.
그들 곁에는 한 권의 고전보다 TV가 가깝고 컴퓨터가 시급하단다.
컴퓨터처럼 빠르고 정확하지만 차갑고 매끄럽고 여유없는 아이들이 될까 두렴다. 우리 엄마들의 입에서 만이라도 『공부해라』가 『책 좀 읽어라』로 바뀌어 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박영자 (충북 청주시 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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