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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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랑스 여배우 「시몬·시뇨레」는 영화 『연상의 여인』에서 삶에 지친 중년에 접어든 한 여인을,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찡하도록 절실히 표현한 신이 있었다.
앞모습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것이 그 뒷모습에서 불현듯 보여질때가 있다. 나이·성적상황이나 분위기 또는 심리상태라든가 하는것이.
누구나 평생을 통해 자신의 뒷모양을 스스로 볼수없다. 그래서 보통 잊고 지내는 곳에 몸의 임자를 적나라하게 업고 있다는것 또한 인생의 묘미를 더 해주는가 싶다.
서구사회에서 가장값진 최상급옷이란 .겉보기에는 예사 옷과별로 달라 보이지 않으나 일단 옷을 입었을때 그 뒷모습에서 투자된 액수를 긍정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옛 조상들도 귀하고 중요한옷에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정성과 솜씨를 기울인 예는 활옷만 보더라도 쉽게 알수있다.
인간들이 몸담고 사는 가옥이나 도시도 뒷모습이 있다. 도시의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에서 그 나라의 꾸밈없는 모습을 쉽게 파악할수 있는것이 아닐까.
며칠전 나는 바라다보고만 지내오던 한강에 꽁지 빠진 닭이 달아나듯 강변도로를 가로질러 강기슭에 내려설수 있었다. 내집과 강을 가로막는 길이 생긴 후로는 처음찾은 강변이었다.
길 때문에 협소해졌을 망정 모래사장에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들이 마치 프랑스 인상파화가 「쇠라」의 『어느 일요일 오후』란 세느강변을 그린 작품을 방불케했다.
그러나 맑고 청청하던 강물은 흙빛으로 변해있고 코를 찌르는 도랑내가 온몸을 끈적하게 휘감아 왔다.
『뭐, 이정도 도랑내 아무것도 아닙니다. 웬만한 호숫가에 가면 더심한 냄새가 나지요』 라며 강태공들은 모래와 쓰레기가 뒤범벅된 모래사장에서 예사롭게 라면을 끓이고 차도 마시며 잠을자는 것이었다.
뿌연 물속에 드리운 나일론 망태 속에는 제법 자란 잉어들이 수북히 펄떡이고, 그 너머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게 솟아올랐다. 철썩철썩, 강기슭을 때리는 물소리만이 에나 다름없다.
재정비되는 거리마다 속속 솟는 빌딩의 숲, 그 앞모습 뒤에 가려진 뒷모습들이 균등하게나마 조화를 이룬 정성이 기울여질 때 88올림픽을 떳떳이 치를수 있게되는것이 아닐까. 소방도로조차 나있지 않은 동네의 시민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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