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전쟁 6개월째…앞으로의 전망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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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전쟁이 27일로 6개월째를 맞았다. 1막의 끝이다.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지난해 11월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원유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를 마친 직후 “원유를 감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국제유가는 올 3월 중순까지 40% 정도 추락해 최저점을 기록했다.

당시 블룸버그 뉴스는 “유가가 너무 떨어져 미국 셰일 원유 회사들이 궁지에 몰렸다”며 “셰일 원유 생산이 줄면 국제유가가 다시 오른다는 게 알나이미의 예측”이라고 전했다.

3월 중순 이후 두 달 정도가 흘렀다. 27일 현재 국제유가는 최저점과 견줘 30% 넘게 회복했다. 톰슨로이터 등은 “알나이미가 원유전쟁 1막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알나이미는 "우리가 생산량을 유지하면 셰일 업체가 생산을 포기해 유가는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셰일 업계가 원유 생산을 포기했을까. 에너지?금속 정보회사인 미국 플래츠(Platts)의 데이브 에른스버거 이사는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석유컨퍼런스 연설 직후 본지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미국 원유채굴 건수는 급감했지만 미 원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난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원유 채굴 건수는 줄었지만 기존 유전당 생산량이 급증해서다.

미국 셰일 업계의 놀라운 생존력이다. 에른스버거는 “기술 혁신이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셰일 가스 생산 원가가 애초 배럴당 60달러 선으로 봤으나 지금은 40달러 대로 낮아졌다”며 “채굴 기술이 좋아져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 셰일 회사들은 순발력도 뛰어나다. 에른스버거는 “미국 셰일 업체는 폐쇄된 셰일 유전을 단 15~30일에 재가동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우디 등이 유전을 재가동하려면 60~90일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셰일 업체가 국제유가에 따라 생산을 줄였다 늘였다를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 셰일 업계의 생명력과 순발력은 알나이미가 간과한 대목이다. 원유 과잉 공급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에른스버거는 “현재 하루 250만 배럴 정도가 과잉 공급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일일 원유수요는 “연간 100만 배럴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앞으로 3년 정도 공급초과 상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바람에 올 하반기에 국제유가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은행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다. 이곳은 올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45달러 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 과잉이 핵심 근거였다.

반면 헤지펀드들은 요즘 국제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나섰다. 블룸버그는“그동안 유가 하락에 베팅해 돈을 번 헤지펀드들이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만큼 유가 전망이 엇갈린다는 방증이다.

실제 투자은행과 에너지 리서치 회사들의 올 하반기 유가 전망은 배럴당 42~80달러일 정도로 제각각이다. 플래츠는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 사이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져 45달러 수준까지 밀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내년 하반기에 50달러대를 회복하고 2020년이 되어야 60달러대에 이를 것으로 봤다.

에른버거 이사는“미 셰일 업체의 순발력 때문에 원유 공급이 그나마 탄력적이어서 90년대 초처럼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사우디가 (원유전쟁 2막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사우디가 선전포고를 한 지 6개월, 사우디는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의 판정은 아직은 무승부 쪽이 우세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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