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佛 문화원서 개인전… 70년대 인기가수 정미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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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이런 미련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범인(凡人)들은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개여울''휘파람을 부세요''불꽃' 등의 노래를 부른 1970년대 인기가수 정미조(53.수원대 교수)씨를 기억하는지. 한때 정상급 가수로 인기를 누렸던 그가 지금은 중견화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정씨는 바로 이런 점에서 평범치 않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개인 전시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한창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당시로선 보기 드문 큰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로 '비디오형 가수'로 평가받았던 정씨는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웃는 모습이 여전히 화사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옛 생각이 떠오르는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로 짐작컨대 시원했던 목청도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정씨는 자신이 가수활동을 접었던 1979년 무렵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학(이화여대 미대)시절 뛰어난 노래솜씨로 대학가 인기가수로 입소문이 나면서 음반사 사장에게 발탁돼 72년 졸업과 동시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고 한다.

그후 각종 가요제에서 수십차례 입상하는 등 '잘 나가던' 정씨의 은퇴와 유학 선언은 당시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정씨는 가요계를 떠났던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수활동을 할 때 방송 출연 횟수를 달력에 표시해봤요. 한달이 지나고 세어보니 자그마치 TV만 28회더군요. 그래도 처음엔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게 좋았어요. 무엇보다 정말 제대로 된 무대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5~6년 정도 지나니 어릴 때부터 키워온 화가의 꿈이 머릿속에서 다시 꿈틀거리더군요. 첫 음반을 내면서 은사님들께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해둔 상태였고요. 그래서 은퇴 1년 전부터는 활동을 줄이고 유학준비를 했죠. 당시 '돌연 은퇴'라고들 했지만 저에게는 '계획된 은퇴'였지요."

자신의 말처럼 어려서부터 정씨의 꿈은 화가였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중학교 3학년 때 이후 장래희망이 화가였다. 타고 난 '끼'가 넘쳐 그 이전에는 무용(발레)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저는 부모님을 많이 닮았어요. 아버지가 경기도 김포에서 양조장을 하셨는데 워낙 풍류를 즐기셨던 분이셨어요. 사교춤 선생을 집으로 불러 어머니와 함께 배우셨을 정도였거든요. 어머니도 학창시절에 매스게임 지휘자를 하셨대요. 그런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끼 때문에 진로를 결정할 때마다 고민이 많았죠. 무용도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하지만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씨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 나머지는 까맣게 잊는 체질'. 7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후에는 학교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8층짜리 아파트만을 오가며 줄곧 그림만 그렸단다.

물론 '한국의 톱가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더러는 한곡조씩 뽑기도 했지만 노래에 대한 갈증은 더 이상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화가로 제2의 인생이 확실하게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91년 귀국한 뒤 수원대 강단에 서면서 제자를 가르치는 일과 개인 창작활동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결혼도 늦었다. 정씨는 93년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원용계(60)씨와 결혼했다. 둘 사이엔 아직 자녀가 없단다.

그런데 이처럼 철저하게 무대를 외면하고 화가로만 살아온 정씨지만 최근 마이크를 잡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회 첫날 2부 행사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개여울' 등 8곡을 관람객 앞에서 불렀다.

우리나라와 캐나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밴쿠버에서 열리는 초대전에서도 본 행사에 앞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이유가 궁금했다.

"더 많은 관람객이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기 때문이죠. 일반인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는 비디오아트 쪽에 손을 뻗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죠. 게다가 그동안은 저를 현직 화가가 아니라 전직 가수로만 보는 데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젠 그게 완전히 사라졌어요. 오히려 그림.노래.춤에 대한 제 재능과 열정을 모두 고스란히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언젠가는 대형 무대에서 '종합 예인(藝人)'으로서 저의 끼를 마음대로 분출할 수 있는 전시회 겸 콘서트를 열고야 말 겁니다."

글=남궁욱,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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