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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나성에 가면’ 가수 권성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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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권씨는 무학여고 1학년 재학 시절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오페라 프리마돈나를 꿈꾸며 열심히 노래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음차)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발랄한 라틴풍의 노래는 가수 권성희(61)가 속했던 혼성 3인조 그룹 ‘세샘트리오’를 단박에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원곡은 ‘LA에 가면’”이라며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재녹음했다”고 말했다.

 ‘나성’ 덕분인지 노래의 이국적인 맛은 더해졌다. 세샘트리오는 미국 투어에 나설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동덕여대 성악과 재학 중 데뷔한 권씨는 ‘패티 김을 이을 디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팀은 5년 만에 해체됐다. 그는 83년 솔로로 데뷔했지만 빛을 못봤다. 권씨는 “솔로 활동 직전 통행금지가 해제돼 야간 업소가 많이 생겼다”며 “방송은 뜸했지만 노래를 놓지는 않았다. 디너쇼나 극장식 레스토랑 등에서 꾸준히 무대에 섰다”고 했다.

 그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러나 노래의 재능까지 버리진 않았다. 무대 대신 양로원을 택했다.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조용히 노래 봉사활동을 했다. “처음에 김상희 선배 등 친한 연예인들이 좋은 일 해보자면서 양로원을 찾아다녔다”며 “그러다 큰 잔치를 열자고 마음을 모아 특별한 무대를 꾸몄다”고 했다.

1982년 활동 당시 ‘세샘트리오’의 모습. 세샘은 3개의 맑은 샘을 뜻한다. 세샘트리오의 멤버였던 전언수·권성희·전항씨(사진 왼쪽부터). [중앙포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매년 6월이면 열리는 ‘한마음축제(주최 한국연예인한마음회)’다. 주현미·현숙·설운도부터 인순이·이은하·조갑경까지 40여 명의 가수들이 총출동해 4시간 넘게 공연을 한다. 그런데 입장은 무료다. 게다가 점심과 간식도 제공한다. 서울시 25개 구청에서 초청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관객이다. 해마다 5000명 이상이 공연장을 찾는다. 올해 축제는 다음달 3일 오전 10시부터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올해 17번째를 맞는 행사는 회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졌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참여를 자청한 가수도 많아졌다. 역대 서울시장들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권씨는 “어르신들이 참석하는 행사다 보니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늘 앰뷸런스를 대기시키고 노심초사한다”며 “그래도 하늘이 도와주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상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행사를 할 때마다 부모님을 떠올린단다. 그는 “아프신 부모님을 오래 모시고 살았다. 살아계셨을 때와 돌아가셨을 때 차이가 너무 크더라”며 “노래하면서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쁜 와중에도 동참해주는 동료들도 다 같은 마음”이라며 “수천 명분의 도시락을 나눠주고 어르신들 챙겨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어느덧 권씨도 환갑을 넘겼다. 그래도 그는 가수로서 남은 마지막 꿈을 향해 달린다. ‘사랑의 미로’나 ‘애모’처럼 오랫동안 불릴 수 있는 노래를 내놓는 게 목표다. “이제 뭔가 남기고 싶어요. 그런 노래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어요.”

글=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상 유튜브 013pic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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