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연속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사람들은 TV나 라디오의 일일연속극을「소프 오페라」라고 한다. 직역하면「비누가극」. 여기엔 유래가 있다.
1940년대 미국 라디오의 낮 연속극은 주부들의 인기프로였다. 그때만해도 미국의 주부들은 가사에 매달려 빨래하랴, 다림질하랴 분주한 나날이었다. 그러자니 일하는 수고를 잊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았다.
라디오는 바로 그런 주부들을 겨냥해 일일연속극을 시작했다. 여기에 맞장구를 친것이 광고다. 비누 회사들이 앞을 다투어 그 프로의 스폰서가 되었다.
일일연속극은 그때부터 소프 오페라가 되었다.
『미국슬랭사전』(「H·웬트워드」「S·B·플렉스너」공편저) 을 보면 1950년대의 소프 오페라는 미국의「보통 사람둘」에게 없어서는 안될 프로였다. 오죽하면『소프 오페라생존』(soap opra existence)이라는 표현까지 했겠는가.
그 내용도 어쩌면 요즘의 우리와 그리도 같은지, 시비와 시비의 연속이요, 외상값 타령, 법석대기, 눈물을 강요하는 얘기들 뿐이었다. 나중엔 눈물을 짜내는「멜러 드라머」를「소프 오페라」라고 한것은 제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면 눈물이 나온다는 뜻으로 비꼰 말이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이런 해묵은 얘기는 마치 요즘의 우리나라 TV나 라디오 얘기를 하는것같다.
우리 일일연속극에서『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얘기가 있다. 걸핏하면 목청을 돋워 싸우는 얘기가 그렇고, 우스개 얘기마저도 시비로 일관한다. 통계는 없지만 그 다음쯤이 훌쩍훌쩍 울기가 아닐까.
혹 그것은 우리일상의 반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일상은 그런 드라머의 영향에서 벗어날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아이들의 일상대화를 엿들어도 그런 인상을 받는다.
요즘 어느 TV사가 추계프로를 개편하며 일일연속극을 페지하자 저마다 엇갈리는 반응들이 재미있다. 없어도 된다는 쪽은 평소 식상감의 반응이고, 다른 한족에선「질」의 문제이지 존폐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번기회에 우리나라 TV는 본격 대중드라머의 장르를 개발하는 용단과 노력도 기대해 봄직하다. 미국의『페이턴 플레이스』나『월튼네 사람들』같은 TV극은 그런 드라머의 모델로 꼽을수 있을것이다.
우리나라에 TV가 상륙한지 28년. 이제 때묻은 허물을 벗을 때도 되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