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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남자 독일을 바꾼 그것은…슈뢰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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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71)는 '뚝심과 소신의 사나이'로 불린다. 그는 총리 시절 ‘아젠더 2010’으로 불리는 총체적 국가 개혁을 추진했다. 소속당인 사민당(SPD)과 지지 기반인 노동계는 격렬히 반발했다. 중도좌파 성향인 사민당 노선과 상반된 우파 정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슈뢰더는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전락시키는 통일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현재 독일 경제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그러나 슈뢰더 본인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무릅쓴 탓에 지지율이 급락했다. 결국 '아젠더 2010' 추진 2년만에 총선에서 패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식장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울려 퍼졌다. 21일 제주포럼에 참석한 슈뢰더 전 총리를 인터뷰했다.

-총리 시절인 2003년 3월14일 연방의회에서 '아젠더 2010'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일으켜 세우려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것 외엔 길이 없었다. 개혁의 골자는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고 연금과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병든 남자였던 독일이 오늘날 건강한 여자가 됐다(웃음).”

-개혁에서 역점을 둔 대목은
“우선 노동시장을 바꿔야 했다. 노년층의 일자리와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가 동시에 확보되게끔 해야 했다. 다음으로 연금 수령 연령을 높여야 했다. 재정을 고려할 때 65세는 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중요한 게 개혁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

-개혁을 밀어붙인 끝에 총리직을 잃었다.
“어떤 정치인이 총선에서 지고 싶겠나. 나 역시 인기 없는 개혁을 밀어붙이면 낙선할 우려가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익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은 사익보다 국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당신의 노동시장 개혁정책인 '하르츠법안'은 한국 기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실업 급여에 돈을 쓰기 보다 일자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일할 역량이 있는 사람은 일하고, 나이나 병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사람에게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개혁 과정에서 독일도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조직이 역할을 했나.
“개혁 초기에 비슷한 조직이 있었다. 정부와 노조·사용자단체가 참여했다. 그런데 사용자단체나 노조가 정부에 대해 요구만 할 뿐 합의를 도출하는 데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다행히 독일에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청산작업이 있었다. 일본도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책임을 느끼길 바란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 한국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적 가혹 행위에 대해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의미하나.
“'위안부'란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너무 완곡한 어법이다.”

-한국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박 대통령은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에서 통일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일 비용이 엄청나다는 걸 예상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통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통일은 비용뿐 아니라 기회도 준다. 통일되고 민주화된 북한은 큰 시장이다. 통일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남북 연방'(confederation)수준이 아니라 한국과 똑같은 체제가 돼야 한다. 지금의 북한 정치 체제는 사라져야 한다.”

슈뢰더 전 총리는 제주포럼 직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특별대담에서 "(자신이 추진한 ‘어젠다 2010’과 관련)의회에서 정부의 개혁 조치를 법률로 중단시켰고 사임하라는 압력까지 넣었지만 지도자라면 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서 결단을 피해선 안 된다. 대신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지'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어젠다 2010'를 시행하기까지 저항을 어떻게 이겨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인터뷰=유권하 코리아중앙데일리 편집인(전 중앙일보 베를린 특파원), 정리=김사라 기자, 김영민 기자 kim.sara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