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신비에 환상의 세계가 조화 | 체코 교포 이기순씨의 작품 세계…이경성<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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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기순씨의 작품에는 동양의 신비를 가득 답은 환상의 세계가 꿈틀거린다.
불교적인 사상, 도교적인 사상, 유교적인 사상 등 온갖 종교적 상념을 하나로 모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구름·물·공기·바다·산·달·해·별, 그리고 새와 꽃, 말하자면 우주의 모든 현상과 존재가 아름다운 상태로 조화되고 있는 신비로운 경지가 그의 작품속에 실현되고 있다.
말하자면 범신론적인 사상이 그의 작품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러한 예술의 기초 속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동유럽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신비 사상이 겹친다.
그것은 곧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며, 종합에서 오는 차원 높은 미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의 예술의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체험과 교육이다.
그는 박연폭포 근처에서 수도승으로 계신 아버지 곁에서 폭포와 강과 바위와 꽃과 새와 나비를 보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무위자연을 배운 것이다.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남송 거장들의 작품을 섭렵하고 우리나라 화가인 김홍도·최북·이인문의 기법을 배웠다.
이처럼 이기순 예술의 뿌리는 동양적인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 데생을 열심히 하여 유화·수채화는 물론 서예와 타피스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이기순씨의 미술세계는 정교하면서도 도억이며 가안 색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차분하고 강렬한 재질감을 보여준다.
그가 하는 타피스트리작업은 회화와 유사하다. 평평한 털천에다 여러 가지 양털을 사용, 그림을 창조한다. 이기순시는 타피스트리작업에도 반드시 모델로 사용할 그림을 그려서 만들어낸다.
「야로슬라브·베이체크」씨는 체코슬로바키아 미협 주석을 지낸 조각가.
그의 작품은 체코를 비롯, 유럽 여러 나라의 공공시설과 미술관에 많이 수장되어 있다.
그의 조각작품 경향은 유럽의 깊은 전동에 뿌리박고 있다.
확산하는 힘으로 지적이고 의지적인 공간을 창조해 낸다. 「베이체크」씨의 작품은 조각의 본질이 되고 있는 매스를 중심으로 해서 내부보다는 외부로 확산되는 힘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테크닉도 거대하고 강해서 보는 사람의 감각을 깊은 감동으로 사로잡는다.
그의 작품의 본질은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이 갖고 있는 동·서문화의 신비로운 결합을 송두리째 지니고 있는 강렬한 생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베이체크」씨는 조각뿐 아니라 도자기도 빚는다.
동·서 교류의 거점에 있는 나라 사람인 만큼 작품 역시 동양 것도 서양 것도 아닌 독특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환상적이고 우화적이어서 인간의 생활 개념을 벗어나 높은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러한 점에서 화가 이기순과 조각가 「야로슬라브·베이체크」는 현실 세계에서 탈피, 보다 자유로운 생명의 근원에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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