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다-낙원화원 주인 김보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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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낙원동아줌마」-김보구씨(56)의 하루는 아직 어두운 시각인 새벽5시부터 시작된다.
서울 남가좌동집을 나서 반포동고속버스 터미널부근 고벤트상가 지하에 자리잡은 꽃도매시장에 그날그날 필요한 꽃을 지방에서 갓올라온 싱싱한것으로골라 사기 위해서다.
노란 잔국화 20단, 보라색과횐색 대국 각10단등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날 필요한 꽃의 종류와 빛깔·수량이 정확히 메모되어있다.
3명의 종업원이있지만 꽃구입은 반드시 본인이 한다.
올해로 낙원화원을 경영한지 27년째.
서울 낙원동에서만 맴돈데다 지금의 허리웃 극장옆 골목안에 자리잡은지도 10년이넘어 낙원동일대, 꽃도매시장에서는 「낙원동 아줌마」로 불린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에겐 국악인 박귀희씨등 20여년이 넘는 단골들이 있다.
『24살, 갓결혼한 새댁때 꽃장사를 시작했어요. 공무원인 남편의 박봉으로는 살림살이를 꾸려나갈수 없어 낙원동에 작은식품점을 열고 한옆에 시골에서 부인네들이 머리에 이고온꽃을 받아 팔기 시작했는데 제가 꽃을 좋아하는데다 인기가 높아 곧 꽃만을 취급케 됐어요』
당시는 정말 꽃을 좋아해서 한두송이 사가는 여학생·젊은부인등이 주된 고객이었다.
그러나 사철 온실재배꽃이 흔해지고 사는 형편들이 나아지면서 선물용 꽃바구니·화환·화분이 주종을 이루게되어 『고급화하고 단위는 커졌지만 꽃파는 재미는 없어졌다』 고.
따라서 가정의례준칙으로 서리를 맞는등 사회분위기, 일반경기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김씨는 77, 78년을 호경기, 80∼82년은 불경기, 83년부터는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꼽는다.
그동안 꽃도매시장의 모습도크게 달라졌다.
그가 꽃가게를 연50년대말에는 빈터였던 오늘의종각옆에서 새벽 통행금지가 풀린 시각부터 매일아침 꽃장이섰다.
구파발·고양군·과천등지의 농가에서 부업으로 키운 꽃들이 달구지에 얹혀왔다.
이어마산· 창원등지에서 꽃재배가 전문화하면서 그랜드호텔옆 지하꽃상가·남대문꽃시장등을 거쳐 오늘의 고벤트상가로 옮겨지면서 전문시장화되었다.
3명의 기사를 데리고 일하는 김여사 가게의 요즈음 하루매상은 평균 15만원정도.
『앞으로 남고 뒤로밑지는 장사』라 인건비·집세등을 빼면 대졸의 중급 월급장이 보다 조금나은 수입(?)이라고한다.
20여년전, 강서구 외발산동에3천여평의 땅을 마련하여 정원수를 키워온 그는 이곳에 중학과정의 원예학교를 세우는것이 꿈이다.
평양태생으로 그곳정의여고를 졸업했다.
부군과는10여년전 사별, 슬하에 맏아들권수영씨(32·현대건설)등 장성한 2남2녀.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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