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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시작한 성악 … 로열 오페라단 전속될 줄 저도 몰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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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지훈씨는 영국 로열 오페라에서 전속 가수로 170차례나 노래를 불렀다. 그는 무대에 서는 건 ‘전쟁’이라고 했다. [사진 로열 오페라 하우스]

세계적인 영국의 로열 오페라단에 전속 가수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베테랑 베이스인 제러미 화이트와 한국인 신예 김지훈(35)씨다. 김씨는 학업을 마치자마자 로열 오페라단에 서기 시작했고 4년 차인 2014/2015 시즌부터 전속(Principal)이 됐다. 그 때문에 남들은 한 번 서는 게 꿈이라는 무대에 170번 올랐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꿈은 교사였다. 고교(남양주 동화고)에 진학한 뒤 학교 중창반에 가입했고, 3학년이 돼서야 레슨을 받았다.

그 후 서울음대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베르디 음악원을 거쳐 세계적인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예트 파커)의 수혜자가 되면서 로열 오페라단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이 ‘내년 5월에 뭐 해’라고 하면 난 ‘내일 일만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며 “그래도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계속 노래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열 오페라단의 첫 한국인 전속이다.

 “사실 프린서펄이란 게 없는 자리인데 저한테 일을 주기 위해 만든 자리다.”

 -이유는.

 “신뢰하는 것 같다. 작은 역을 하든 중간 역, 큰 역이든 시켜놓으면 잘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발레리노로부터 배운다고 들었다.

 “오페라 연출에 관심이 많은 로열 발레단의 발레리노에게서 배운다. 리골레토를 할 때였는데 무대 위에서 30걸음을 걸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그가 등에 부채를 편다는 생각으로 걸으면 괜찮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배우고 있다.”

 -일상과 그리 다른가.

 “손을 움직이는 법부터 걸음걸이까지 다 배워야 할 때였다. 역시 리골레토 할 때였는데 체프라노 백작 역할이었다. 계급이 낮은 역을 상대했는데 유명한 성악가인데다 연세도 있으셔서 내가 예의 바르게 대했던 듯 하다. 데이비드 매비터 감독이 펍에서 그분을 만나 ‘이 친구를 가르치기 위해 뭘 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더니 헤드락을 걸곤 그 배우의 머리를 쳤다. 나에게도 똑같은 걸 해보라고 하더라. ‘네가 이걸 하면 무대에서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로열 오페라단에서 1년 차 때의 일이다. 동양인 얼굴이 평평해서 안 보일 거라고 하지만 서양인들이 오히려 눈이 들어가 조명을 받으면 전체가 까맣게 보이는데 우린 눈이 보여 감정이 잘 전달된다는 장점도 있다.”

 -무대에 선다는 게 냉정한 일일 텐데.

 “사실 전쟁이다. 나와 다른 가수들이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 그거에 지면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영국 소프라노인 데임 조세핀 바스토에게서 배운다.”

 -스스로 목소리에 대해 평한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베이스에 비해 어두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 속으로 ‘아, 내 소리는 왜 이리 두껍지’

하고 말하곤 한다.”

 그는 로열 오페라 내 무대에서 한국 가곡을 불렀고 학생들 대상 공연 때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기도 했다. 그는 “꿈을 이뤄서 엄청난 극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중압감을 느끼기보다 무대가 늘 재미있어서 산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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