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교포여인-서울 남동생 42년만에 일본서 극적인 상봉|전대통령 오찬중인 일수상관저 옆 의원회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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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두환대통령이「나까소네」(중회근강홍) 수상주최 오찬을 끝내고 수상관저를 떠날 무렵인 7일 하오3시관저에서 불과1백m정도떨어진 의원제1회관 1층면회실에서는 42년만에 만나는 사할린의 누님과 서울의 남동생이 극적인 재회의 순간을 맞고있었다.
8월31일 소련땅 사할린에서 일본에온 김산기씨(56·사할린 유지노사할린스크거주) 와 7일 서울에서 날아온 김명기씨 (51·건축업·서울강동구방이동117의18) 남매.
『누님.』『명기야.』
면회실에서 기다리는 누님의 모습을 본 동생은 여행가방을 내동댕이치고 달려가 누님을 부르며 부둥켜 안았고 가슴에 안긴 누님은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을 동생의 어깨에 부비며 이름을 불렀다.
남매의 상봉에 자리를 같이했던 김산기씨의 남편 권희덕씨 (60·사할린주의료기기관리국 기사장) 와 권씨의 동생 희학씨 (55·대구시 경희여상고 기획실장)희태씨 (52·경북여상고교장) 형제, 그리고 김명기씨의 부인 공준정씨(42)도 눈물을 감추지 못해 방안은 잠시 눈물바다가 됐다.
권희덕씨 부부가 일본에서 각기 동생들을 만나게 된것은 일본 공명당 「구사가와」 (초천소삼)의원의 주선에 의한것.
김산기남매의 이날 상봉이 일본의원회관에서 이루어 진것도 이때문이었다.
남편 권희덕씨가 고향인경북김천을 떠난것은 20세때인 l944년 일제의 징용때문이었다 .
사할린의 나이브티 탄광으로 바로 끌려간 그는 l년뒤 해방이되고도 고향에 돌아올 길이 없어 대구에서 약국점원을 한 경험을 살려 니시나이브티라는 곳의 병원에 자리를 얻고 정착의 길을 밟았다.
49년에는 아버지를 따라 사할린에 와있던 부인 김산기씨와 결혼하고 한국동란이 끝난 53년에 근 소련국적까지 취득했다.
병원 임상검사소에서 일하던 그는 52년 일본인들이 귀국하면서 못쓰게 만들어 놓은 렌트겐사진기를 고친것이 인연이돼 주당국의 인정을 받고 58년과 60년 두차례에 걸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 파견되어 기술연수를 받았으며 65년에는 전문학교를 수료, 의료기기관리국의 기사장으로까지 승진했다.
큰아들 권제동씨(34) 는 노보시빌리스그 종합대학을나와 물리학과외 준박사학위를 받고있다.
이처럼 소련땅에 자리를잡은 그는 이제 새삼스럽게 조국에 돌아와 무엇을하겠는가고 귀국의사가 없음을 솔직이 말하고있다.
부인 김산기씨는 3대독자인 동생 명기씨를 고향인 강원도강릉에 남겨놓은채 아버지를 따라 사할린으로 간것이 남매가 헤어지는 계기가 됐다.
사할린에서 북해도 기예학교로 유학, 일단 사할린을 떠났으나 종전 1주일전에 다시 아버지가 있는 사할린으로 돌아간것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구사가와」 의원이 이들을 초청하기 전에도 이들 일가는 이미 서로의 생존을 확인, 권희덕씨는 82년에 동생 권희태씨와 처남 김명기씨를 일본에서 만났다.
사할린 주당국자의 통역으로 일본에 5차례나 여행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아는 일본인들을 통해 동생의 소재를 확인했다는것.
그는 사할린에 사는 4만여명의 한국동포중 5천∼6천명이 지금도 한국의 가족과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히고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한국땅에서 혈육을 만날 수 있게되기를 바랐다.
또 사할린 잔류 한국동포중 적지않은 수가 무국적자이나 이들이 대부분 한때 북한적을 취득했다가 환멸을 느끼고 무국적자로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실정을 털어 놓았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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