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伯牙絶絃). 소중한 친구를 잃었을 때의 슬픔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명수였던 백아가 자기를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사연에서 유래했다. 김경호씨는 10년 전 장충식(1941~2005) 동국대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이 단어를 떠올렸다. 스승의 임종 소식에 사경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김씨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인생의 어른 셋을 꼽았다. (※는 김씨에 대한 그들의 촌평)
①박상국(68)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사경 조사와 연구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경 관련 자료를 보관한 기관과 사람도 연결시켜 주셨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김씨의 실력은 고려시대를 능가한다. 고려시대 사경은 마무리가 약한 편인데 김씨의 작품은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②장충식 전 동국대 박물관장=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우리 불교미술의 흐름을 공부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셨다. 제 작업의 의미를 누구보다 알아주셨고,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가 타계하자 내 자신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심정이었다. (※김씨의 정진에 의해 전통 사경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됐다. 고금의 금석문을 섭렵한 서체도 섬세미려하다-2002년 전시 평에서.)
③안휘준(75)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서울대 미대 교수 때부터 예술가로의 저를 인정해주셨다. 이분만큼 제 작품을 꼼꼼하게 본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마우스피스를 끼고 일해라”라고 하실 만큼 건강도 늘 챙겨주신다. (※한글을 적극 반영하는 등 사경의 현대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불교 이외의 종교에도 마음이 열려 있다. 제자 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