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황무지를 초지로 바꾼 낙농업 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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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낙농업계 원로인 매일유업 김복용 회장이 2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86세.

고인은 1971년 정부투자기관인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해 낙농업에 뛰어든 이후 매일유업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를 국내 일류 유가공 업체로 성장시켰다.

함경남도 이원(利原)에서 태어난 고 김 회장은 46년 월남, 서울 방산시장에서 담배와 잡화 판매로 사업을 시작했다. 56년 무역회사인 공흥기업, 64년 제분회사인 신극동제분을 설립했다. 이 시기 그가 보여준 정직함과 신용은 사업 확장에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특히 담배를 판매하던 시절 당시의 많은 업자들이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담배의 끝 부분에만 질 좋은 재료를 넣고 눈에 안 보이는 중간에는 잡초 등을 섞는 속임수를 썼지만 고인은 좋은 품질의 담배만을 팔아 거래처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농림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낙농업을 발전시키려 했던 당시 정부의 권유 등에 힘입어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했다. 그는 이후 매일 새롭고 신선한 우유를 공급한다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매일유업'으로 바꿨다. 고인은 정부와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전국의 황무지를 초지로 개량하고 미국.뉴질랜드 등에서 우량 젖소를 도입해 낙농가에 보급했다. 70년대 자금이 없는 농가를 위해 젖소를 우선 공급하고 여러 해에 걸쳐 우유를 대금으로 받는 방식으로 젖소보급을 늘리기도 했다.

'품질 제일주의'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고인은 유제품 품질향상에도 노력했다. 한림대 등과 산학 협동으로 고품질의 유제품 생산을 위한 연구를 했으며 품질관리를 위해 '무균화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76년 농림부장관 표창, 78년 동탑산업훈장, 99년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으며 한림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전남대에서 명예 농학박사, 뉴질랜드 메세이 대학에서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96년에는 아호를 딴 진암(晋巖)장학재단을 설립, 불우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학술연구비 지원 활동을 펼쳤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인순 여사(71)와 매일유업 대표인 아들 정완(49).정석(47.복원 대표), 정민(44.중경물산 대표) 그리고 딸 진희(46.평택물류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발인은 6일 오전 6시. 02-3010-2631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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