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교차 키르기스 … 1만 개 컨테이너로 만든 시장엔 중국 상품이 8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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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시내에 자리 잡은 ‘컨테이너 마켓’. 제품의 약 80%가 중국산이다.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 각국에서 온 소매상들이 제품을 사 간다. [한우덕 기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다. 이곳까지 온 동방의 물품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멀리는 중동·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시내 거대 쇼핑센터인 ‘도르도이 바자(Dordoy Bazza)’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공터에 쌓인 화물 운송용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로 만든 거대한 쇼핑센터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컨테이너 1층은 매장, 위층은 창고로 활용하는 식이다. 현지에서 물류업을 하는 마나터 HD국제물류 사장은 “도르도이 바자에 있는 컨테이너만 약 1만 개에 달한다”며 “단일 시장으로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쇼핑 골목 길이가 1㎞를 넘는다.

 컨테이너 물류 흐름이 만든 시장이다. 중국에서 물품을 싣고 온 컨테이너는 돌아갈 때 빈 상자로 돌아가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컨테이너에 실어 갈 물품이 없기 때문이다. 버리거나 헐값에 팔아 치운 컨테이너가 이곳에 대량 쌓이게 됐고, 1992년부터 이를 매장으로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중국의 공산품이 중앙아시아인과 만나는 곳이 바로 ‘컨테이너 마켓’인 셈이다.

 신발에서 가구·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상점을 운영하는 나르만(32)은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약 80%가 중국에서 온 잡화”라며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러시아, 멀리 터키 등에서 온 소매상들이 물건을 사 간다”고 말했다. 한국 제품 전문 매장도 있다. LG 상표가 선명한 TV는 2만5000솜(약 50만원), 삼성 TV는 4만 솜(약 80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전상중 비슈케크 한인회 회장은 “중국인들이 야금야금 컨테이너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며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방어할 힘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한우덕 기자·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이봉걸 무역협회 연구위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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