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밀수, 현행세제가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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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금괴 밀수조직이 노리는 「황금의 시장」인 우리나라가 금수출국이라면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도 5백99kg의 금을 해외에 수출한 것을 비롯, 해마다 이정도의 금을 해외시장에 내다 팔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밀수조직들은 우리나라를 복마전으로 보고 「가방떼기」로 앞다퉈 금을 들여오고 있다.
2,3년전까지 중국계가 판을 쳤다고 한다. 금을 나르는 지게꾼도 주로 여인이어서 금을 신체의 은밀한 곳에 숨겨 들어왔다. 이를테면 보따리일수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공항에서 관대한 예우를 받는 백인계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아예 007가방으로 대형화하고 있다. 세관당국에 따르면 작년에는 한햇동안 40여억원어치의 금괴가 적발됐고 올들어서는 벌써 50건에 20억원대를 넘어섰다.
지난22일 김포공항에 버려진(?) 2억여원어치의 금덩어리도 중국계여인의 전화제보가 없었던들 고스란히 국내에 들어올뻔 했다고한다.
이 제보가 밀수조직간의 불화에 연유된 듯 하다니 한국의 노다지시장을 놓고 암투와 알력도 대단한 모양이다.
그러면 국제밀수조직들이 하필이면 왜 우리나라를 겨냥하느냐에 의문이 간다.
고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인과 더불어 황금선호도가 유달리 높다고 하지만 가까운 대만을 제쳐두고 유독 우리나라만을 찾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암달러상 살인사건에서 보았듯이 대낮 도심에서 살인을 하고서도 유유히 빠져나갈수 있을 만큼 활약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암달러상이 많아 환전이 용이하고 국제조직의 국내하수인들 뿌리가 지금껏 드러나지 않아 마음놓고 활개치는 무대로는 안성마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한국이 더없는 매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밀수마진폭이 크다는데 있다. 국제금시세와 국내시세간에는 20%의 가격차가 있어 다섯번 왕래하다가 한번 들키면 금을 버리고 달아나도 밑질것이 없다는 계산이다.
5냥짜리 금괴하나로 50만원이 남아 일부 외국관광객들 가운데는 금몇냥만 숨겨 들어오면 골프도 치고 유흥관광을 즐기고도 돈을 남겨 돌아갈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그러면 왜 국내금값이 국제시세보다 턱없이 비싼가. 그것도 국내금값보다 싼 국제가격으로 금을 수출까지 하는터에….
비싼 이유는 바로 세금체계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현재 가공세금에 붙는 세금은 부가세 10%, 방위세9%, 특별소비세 30%에 금을 실수요자에게 팔았을 때 또 판 대금의 부가세가 추가돼 원가의 50%이상이 세금으로 붙는다.
우리나라 금제련회사에서 내놓는 금값은 한돈쭝(3.75g)에 대체로 3만9천7백여원에 경락된다.
이것이 도매시장에 넘어가면 4만5천원 안팎에서 거래된다. 시중 금은방이 이를 사다가 고객에게 한푼 안남기고 팔더라도 각종 세금이 붙어 7만9백원을 받아야 밑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도깨비 장난처럼 시중 금은방에서는 한돈쭝에 4만8천원에 팔고 있다. 시중 금은방이 자선단체도 아닌데도 7만9백원보다 2만2천9백원이나 싼값으로 파는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국내금 제련회사에서 나오는 금 대신 주로 밀수금이나 고금을 사다가 거래대장에 올리지 않고 팔고있기 때문이다. 국내금 제련회사에서 금을 살 경우 세무자료를 은페할 방법이 없어 거래대장에 반드시 올려야 하지만 밀수금은 그럴 필요성이 없어 싼값에 팔고도 이윤을 챙길수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국내금제련회사는 금을 못팔아 부득이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금도 과거 춘궁기나 입학철에는 많이 나왔으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부터는 뜸해졌고 이따금 전당포에서 약간씩 흘러나올 뿐이다.
결국 밀수금이 시중 금유통의 대중을 이루고 있으며 밀수금은 인정과세가 적용되는 금은방으로서는 호재임이 틀림없다.
국산금의 기피현상 때문에 국내 금생산도 해마다 줄고있다.
해방전까지만 해도 연간 10.3t의 금을 생산했고 남북합쳐 31t(39년도)이나 캐낸 기록이 있으나 근년에는 3∼4t밖에 생산하지 않는 등 해마다 퇴조현상을 보이고있다.
이는 결국 세금체계의 구조적 모순이 빚은 대표적 결과라고 하겠다. 관계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수요량을 연간12∼15t으로 잡고 있다. 이중 국내광산에서 나오는 3∼4t과 수입동광에서 제련되는 1.98t등을 제외하면 적어도 10t가량이 절대부족이다. 이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금이 밀수로 충당되고 있는가를 어림잡을 수 있는 것이다.
86·88의 큰 행사를 앞두고 기념주화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야하는 실정이고 보면 금의 소요량은 갈수록 늘 판이다.
절대량이 태부족이고 금의 국제가격차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밀수는 근절되기 어렵다.
금의 수입관세(20%)와 특별소비세의 과감한 조정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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