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현실에 눈뜬 일 사회당|「한국인정」 외교정책 보고서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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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사회당의 대한자세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당 외교정책위원회는 9월1일자 보고서를 통해 사회당의 한반도 정책을 자가비판하고 『어느 한쪽을 국가로 인정하고 다른 쪽을 부인하는 자세를 경계해야한다』고 지적, 한국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전두환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21세기를 향한 한일신시대의 개막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한국인정여부 논의는 시대착오적인 감마저 없지 않지만 국교정상화이래 20년이 되도록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담을 쌓고 지내온 일본제1야당이 한국에 대한자세전환을 공식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당내 좌파 측의 반발을 사 23일 간부회의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30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재론키로 했는데 관계개선을 지지하는 우파 측의 세력이 우세한 만큼 내용을 삭제 당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을 쓴 「사또」(좌등관수)의원은 지난 4월에도 「한일관계를 생각하는 회」를 만들려다 좌파 측의 반대로 중단한 일이 있다.
이처럼 사회당 내부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배경에는 사회당의 현실 노선으로의 정책전환, 일본국내정치·경제, 한반도를 중심한 주변정세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있는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작년6월 참의원선거에 참패한 사회당은 구태의연한 당의 체질을 개선하지 않고는 살아 남을수 없다는 자각과 반성아래 위원장을 「아스까다」 (비조전웅)에서「이시바시」 (우교정사)로 바꾸고 「뉴사회당」 건설이라는 기치아래 과감한 현실노선으로의 정책전환을 시도했다.
과거 헌법위반이라고 그 존재자체를 부인해온 자위대에 대해 「위헌합법」 이라는 묘한 논리로 합법성을 인정하는가하면 미국의 토마호크 배치만 비난하던 태도를 바꾸어 소련의 SS2O 배치도 비판하고 「이시바시」 위원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는 등 괄목할 변화를 보였다.
이 같은 현실노선으로의 전환은 당연히 일본과 국교를 맺고 있는 한국의 존재를 인정할 것을 요구, 3월31일 기자회견에서 「이시바시」위원장이 직접 3자 회담에 응할 것과 일본정부와 북한의 정치 접촉을 조건으로 대한자세를 바꿀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이시바시」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는데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표명이 전제가 돼야했다는 점도 대한정책의 전환의사를 서두르게 한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4월7일의 방미를 앞두고 「이시바시」 위원장은 직접「맨스필드」 주일대사와 만나 한국과의 교섭이 없었다는 것이 부자연스러웠음을 시인하고 대한접촉의사를 전달했다는 얘기다. 「나까소네」 (중증근강홍) 수상의 방한으로 한일관계가 밀월시대를 맞게된 반면 랭군암살 테러사건으로 일본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자극제가 됐다고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일, 한·중공관계의 개선 등 한반도를 중심한 극동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국과의 단절은 사회당의 국제무대에서의 소외, 낙후를 불가피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변여건이야 어떻든 또 당내 일부의견이야 어떻든 사회당의 대한 접근 자세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당내 좌파의 저항이 집요한데다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이제까지 쌓아올린 북한과의 관계에 상처를 입혀야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연계로도 한국보다는 북한에 가깝다.
그러나 자민당정권이 북한에 접근한다면 사회당으로서도 한국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점에는 많은 관계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있다. 전두환대통령의 방일에 맞추어 대한 관계 개선론을 펴는 이유도 앞을 내다본 포석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하는 의견이 있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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