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시조 제일엔 후계들 한자리에|제주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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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태고의 숲 금산림-. 이끼 오른 수백년 연륜의 고목이 하늘을 찌르듯 빽빽이 들어선 1만여평의 원시림 속에 60여종의 희귀식물이 서식한다.
풍기진씨 4백년 집성촌이 금산림 그늘에 묻혔다.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 마을전체 1백여가구 1백여명의 일가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입향조는 조선초기 인물 진의한. 그는 제주 입도조인 진계백의 7세손이다. 진계백이 제주로 피신할 당시 애월포구에 상륙해 납읍 근처에 정착했기에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선조의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또 진의한의 맏형 진인규는 인근 한경면 판포리에, 둘째형 진인한은 한림읍 명월리에 각각 정착해 3형제 집안이 어깨를 겨루며 가풍을 이어왔다.
해방후 「본관이 풍기인가, 진주인가」를 놓고 의견대립을 벌여왔지만 입도시조 진계백의 제삿날(음력 3월13일)이면 3형제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 한 자손임을 확인하곤 한다.
조선조 제주유림의 본거지였던 이 마을의 옛 지명은 요납. 3명의 진사급 제자를 배출했다해서 생긴 이름이다. 울창한 금산림 언덕에 돌로 쌓은 재단 「초제정」은 마을주민들이 천신과 지신에 제사를 올리는 성역.
매년 음력 초순이면 이곳에 모여 풍년과 무병을 기원해 왔다 한다.
납읍은 북제주군에서 손꼽히는 밀감 생산지이기도 하다. 가구당 소득은 연평균 5백만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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