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본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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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수상이 한국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한국인에 끼친 피해를 사과한다는 공식적인 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과거의 한국침략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한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받아들여 좋을 것이다. 새로운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모색하는 이때 그러한 발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일본수상이 반성한다고 말한 역사적 과오란 아마 「한일합방」에 의한 식민통치를 가리킨 것 같다. 우리 한국은 1910년 일본의 강압으로 국권을 빼앗기고 35년간이나 그들의 가혹한 탄압정치를 받아 그 피해가 컸으므로 이를 사과한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일본의 역사적 과오는 식민통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의 한국침략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미 삼국시대에 일본은 신라·가야를 침범하고 고구려·신라군과 싸운바 있다. 고려 말에는 왜구가 창궐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으며 조선에 들어와서도 삼포의 왜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1592년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 동안이나 우리 강토를 유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의 한일관계사는 일본의 한국침략으로 점철된 역사라 하여 좋을 것이다. 가장 커다란 고통을 겪고 가장 가까운 역사가 「한일합방」 이지만 사실 일본의 한국침략의 역사는 뿌리깊게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민족이 과거의 한일관계사에 대하여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날의 한국침략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새로운 한일관계사를 정립하는데 밑받침이 될 것은 의심치 않는다. 사과를 한다하여 그것이 곧 과거의 역사자체를 소멸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한일관계의 출발에 전제가 되는 것은 사실인 까닭이다. 그러나 뿌리깊은 일본의 침략사에대한 한국인의 원한과 불신을 해소케하기위하여는 일본의 보다 겸허한 자세가 요구된다.
일본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생이 정치가의 외교적인 발언이 되어서는 무의미하다.
일본국민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겸허한 반성을 표현하였을 때 지금부터의 참다운 한일관계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양국의 우호 선린관계를 다짐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일본인의 마음속으로부터의 속죄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한일관계의 새장을 열기 위해서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일본의 대 한국관의 시정이 긴요하다. 일본인은 현재도 한국을 비하하여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오늘날도 오만한 우월감에 도취하여 한국을 열등시한다면 진정한 한일관계의 수립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수년 전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문제에 대한 왜곡사건에 흥분한 적이 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깨끗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은 오늘의 일본인들이 아직도 과거의 한국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기 꺼리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한국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외면하고 있음을 표시한다. 우리가 일본의 진심을 우려하고 있는 면이 바로 여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한일관계사의 정립을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확고한 자세가 중요하다. 일본인에 대한 요구에 앞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일본에 대한 자신감과 의연한 주체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조금도 일본에 꿀리지 않고 우리 문화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진다면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과의 관계라면 무조건 반사적인 거부반응을 일으켜 왔음이 사실이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보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지도 어언 40년을 마지하게 됐고 한일협정을 체결한지도 20년이 다가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도 모든 면에 걸쳐 일목과 대동한 입장에 설만큼 성장하였으므로 무턱대고 반일만을 일삼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 얽매어 움츠리기만 일삼던 시대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도리어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오욕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려는 전진적 자세가 요구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과거지향적인 반일보다도 냉철한 이성적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사의 모색이라 하겠다.
얼마 안 있으면 8월29일의 국치의 날이 다가온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온 민족이 35년 동안이나 비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바로 오욕의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날을 며칠 앞두고 한국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한다는 일본수상의 말을 들으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제 한일관계의 역사는 새로운 장으로 옮겨감을 느끼게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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