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신년기획 중산층을 되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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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서울 도심으로 나들이한 가족들. 이들 중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외환위기 이후 무너진 중산층의 복원이 새해 화두가 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제 중산층을 다시 생각하자. 중산층을 되살리고 북돋워야만 할 절실한 이유가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는 건강하다. 경제만 건강한 게 아니다. 사회.이념.정치 모두가 건강해진다. 좌우의 편차는 있어도 극우나 극좌는 판치지 못한다. 양극화가 분열과 갈등의 문제 인식이라면, 중산층은 통합과 수렴의 현실적 대안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중산층은 급속히 무너졌다.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이 1990년대 중반에는 전체의 70%였다. 그러나 중앙일보 조사 결과 지금은 56%로 내려가 있다. 외환위기 직후 45%까지 떨어졌다는 조사(현대경제연구원)도 있었던 것에 비하면 회복된 셈이지만 한국의 중산층은 여전히 취약하다. 중산층의 전락과 좌절은 계층 갈등과 이념 대결을 키우는 큰 요인이 됐고, 그 속에서 정작 중산층들은 현재의 사회와 정책이 '반(反)중산층적'이라고 여기며 실망하고, 분개한다.

연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8000만원 이상이면 근로소득세 최고세율이 매겨진다. 그런데 이 기준은 96년 정해진 뒤 바뀌지 않았다. 소득.물가가 다 올랐는데 최고세율 소득 기준은 10년째 그대로다. 그동안 세율을 좀 낮췄다지만 중산층에 실질적 도움을 주려면 역시 소득기준을 올려야 한다. 중산층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가진 자'가 아니라 보호받고 육성돼야 하는 '중산층'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의 계절이 왔다. 올해는 지방선거, 내년엔 대통령선거가 있다. 이대로 선거 격랑에 휘말리면 '한국호'는 위험해진다.

그간 우리는 이념.계층 갈등과 양극화만 이야기했지 중산층을 너무 잊고 살았다. 중산층에서 전락한 사람들을 다시 중산층으로 복원하고, 현재의 중산층은 더욱 북돋우는 정책과 정치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갈등을 줄이고 양극화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 왜 중산층인가=연세대 사회학과 김용학 교수는 "중산층은 정치.사회적으로 '버퍼(buffer.완충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좌우의 다양한 이념 분포와 안정을 동시에 원하는 중산층의 강한 응집력이 좌든, 우든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가 운명을 가를 양대 선거를 앞두고 중산층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균형자가 힘을 잃는다면 빈곤층의 박탈감과 불만을 표로 이용하려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서강대 김광두 교수는 "좌절한 중산층에서 반부자.반기업 정서가 싹트고, 이에 편승하려는 정치세력이 '가진 자'를 공격하는 인기 영합 공약을 쏟아내 계층 간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 교수도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일수록 자본과 노동이 대타협에 성공해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뤄냈다"고 강조한다.

중산층 약화는 이미 사회 불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개인 파산, 이혼, 자살은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반영한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중산층 약화다.

◆ 위기의 중산층=중산층 약화는 세계적 추세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중산층은 서서히 줄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산층 약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외환위기 후 노조가 강한 생산직보다는 사무직.행정직.기술직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에 구조조정이 집중됐다"며 "한국의 화이트칼라는 대량 실업의 경험이 없었기에 충격이 컸다"고 진단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중산층이 복원되지 않으면 경제가 회복할 수 없고, 이는 복지 재정의 부족으로 이어져 빈곤층 구제도 어렵게 된다"며 "중산층의 복원이 다른 어떤 정치.경제.사회적 과제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중산층 약화에 따른 문제로 '내수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 장기화'와 '빈부 격차로 인한 반기업.반부자 정서의 확산'이 각각 39%, 37%(복수응답)로 가장 높게 꼽혔다.

◆ 특별취재팀=경제부 정경민 차장(팀장).김종윤.허귀식.김원배.김준술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정책사회부 정철근 기자, 산업부 윤창희 기자, 사건사회부 손해용 기자, 사진부 박종근 기자

특별취재팀<economa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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