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숲서 사랑을 연주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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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3일 오후 6시쯤 동해시 동해동 현대 대동아파트 주차장터. 정복을 입은 군악대 연주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아파트 단지안에 울려퍼지자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화 ‘타이타닉’주제곡이 연주될 15분 뒤엔 비좁은 공연장은 어느새 3백여명의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클래식과 영화음악 연주에선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던 주민들이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에 이어 ‘소양강 처녀’‘남행열차’ 등 흥겨운 노래가 나오자 박수를 치고 합창도 하며 흥겨워 했다. 아예 10여명은 무대 앞으로 나와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동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육군 철벽부대. 부대 소속 군악대는 요즘 동해·삼척 지역 대형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며 야외 연주회를 열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군악대가 부대 밖을 나와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는 연주회를 처음 연 것은 2001년 4월. 삭막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아파트 단지에서 야외 음악회를 열면 군·민 화합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그래서 동해·삼척 지역 대형 아파트 5개 단지를 선정, 매년 봄(4∼5월)·가을(8∼10월)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열고 있다.

정훈공보참모 신한우(36)소령은 “대도시에 비해 문화 행사 접촉의 기회가 적은 지역 주민의 정서 함양과 이웃간의 친목을 다지는 데도 도움을 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23일 대동 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30일 삼척 동부아파트, 6월1일 삼척 신동아 아파트, 6월5일 삼척 강부아파트를 돌며 오후 6시부터 1시간 30여분 사랑의 연주회를 벌일 계획이다.

군악대의 래퍼터리도 클래식과 영화음악·팝송·최신 및 흘러간 가요 등 다양하다. 주민들의 호응도를 높이려고 주민 노래자랑 기회도 준다.

원래 17곡 연주로 1시간 스케줄을 잡고 있지만 주민들의 앵콜 요청으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특히 반주에 맞춰 어깨춤을 덩실대는 60대 할머니·할아버지, 랩 노래를 부르는 30대 주부, 게다리 막춤을 흔들어대는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지루하지도 않다.

군악대 소속 이창원(24·베이스 기타)병장은 “군 행사와 겹칠때는 힘들지만 공연이 끝난 뒤 주민들이 ‘고생했다’며 음료수를 건내주면 피로가 확 가신다”고 말했다.

주민 윤혜경(36·여)씨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 음악이 흘러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돼고 잘 모르던 이웃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마련돼 좋다”고 말했다.

철벽부대 군악대는 아파트 단지 공연 외에도 맹방 등 삼척 지역 해수욕장과 삼척 환선굴·강릉 정동진 등 지역 유명 관광지를 돌기도 하고, 어버이날 행사·환경음악회·장애인 체육대회 등 지역 단체나 주민들의 요청에도 응한다. 2001년 4월부터 지역 주민과 관광객 대상 공연이 1백10여회에 이른다.

철벽부대 윤명기(55·소장)사단장은 “아파트 주민을 위한 야외 공연의 호응이 의외로 좋아 앞으로 음향 시설이 좋은 실내 공연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정기 무료 연주회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척=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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