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샛별들의 잔치는 화려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005년의 세계바둑은 이창호.이세돌.최철한.박영훈 등 4천왕의 해였다. 막강한 실력을 지닌 이들 4명은 세계를 평정했고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이들 4천왕의 틈새를 뚫고 새롭게 떠오른 얼굴들이 있다. 박정상 5단,강동윤 4단, 이영구 4단, 고근태 3단,옥득진 2단은 국내에서 떠오른 샛별들이다. 이들은 고비 고비에서 4천왕을 요격하며 올해 첫 우승을 기록했다. 무명기사 옥득진은 어느날 갑자기 왕위전 도전자가 되어 화제를 몰고 왔다.

중국에선 이창호 9단을 꺾으며 LG배 결승까지 오른 16세 신예 천야오예(陳耀燁) 4단이 최고의 별이 됐다. 재기에 성공한 창하오(常昊) 9단, 속기 명수로 이름을 알린 뤄시허(羅洗河) 9단도 4천왕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국내=21세의 박정상 5단은 40세 미만 기사들만이 참가하는 1회 마스터즈대회에서 우승했다. 생애 첫 우승과 함께 '정상의 기사 박정상'이란 플래카드가 등장하기도 했다. 박정상은 현재 한국랭킹 7위, 다승 4위에 올라 있다.

일찍부터 기대를 모으던 16세 소년 강자 강동윤 4단은 SK가스배와 오스람코리아배 등 두 개의 신예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해 한국바둑을 이어갈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세돌 9단을 꺾고 농심배 한국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현재 랭킹 18위, 다승 8위.

꾸준히 우승권을 맴돌던 18세의 이영구 4단은 12월에 열린 2005 마스터즈 제왕에서 막차로 우승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왕위전에서 이세돌 9단을 탈락시켰던 이영구는 현재 랭킹 14위, 다승 2위다.

고근태 3단은 아마추어 경력이 있음에도 아직 18세에 불과하다. SK가스배 결승에서 강동윤에게 무릎을 꿇었던 고근태는 천원전에서 이세돌.조훈현.안조영 9단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라 또다른 돌풍의 주인공 박정근 초단을 2대1로 꺾고 생애 첫 우승컵을 차지했다.

무명기사 옥득진 2단은 올 여름 내내 4천왕을 제치고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군대 가기 전까지 무명기사였던 옥득진이 제대한 직후 참가한 KT배 왕위전에서 갑자기 성적을 내기 시작하더니 끝내 도전권까지 거머쥐었다. 명문 기전인 왕위전 도전기는 지난 15년간 조훈현.이창호.유창혁.이세돌 등 4명의 출입만을 허용했고 이창호 9단이 9년 연속 우승컵을 독식해 왔다. 그런데 이창호 10년 연패의 희생양은 누굴까 싶을 때 옥득진이란 무명기사가 나타난 것이다. 옥득진은 3대1로 져 준우승에 멈췄으나 '군대는 프로의 무덤'이란 종래의 속설을 뒤집는등 최고의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국외='타도 한국'의 기치를 높이 내건 중국은 올해도 목적 달성엔 실패했다. 그러나 중국은 창하오 9단이 응씨배 결승에서 최철한을 꺾고 우승했고 구리(古力) 7단이 이세돌 9단을 꺾고 LG배 결승에 올랐다. 15세 신예 천야오예 4단은 LG배에서 이창호를 격파하더니 끝내 결승까지 올라 미래의 강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속기 명수 뤄시허 9단도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최철한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라 한국의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등장했다.

일본은 올해도 세계무대에서 참패를 거듭했고 한국의 적수가 되기엔 너무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카오 신지(高尾紳路) 9단과 고노린(河野臨) 9단이 본인방전과 천원전에서 새 타이틀 보유자로 등장하며 도전의 꿈을 키웠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