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엔 더 이상 자유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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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곁을 지켜왔던 40대 경제보좌관이 크렘린의 독재.전횡을 거세게 비난한 뒤 사표를 제출했다.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44.사진) 경제보좌관은 27일 "6년 전 러시아에 경제적 자유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 자리를 맡았으나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크렘린 측은 그의 발언 몇 시간 뒤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발표했다.

일라리오노프의 전격 사임은 러시아의 체제 변화를 바라보는 서방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그가 푸틴 행정부 내에서 대표적인 시장경제 개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BBC는 "내년 1월부터 서방 선진 8개국(G7+러시아) 정상회의 의장 역할을 맡을 푸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사임을 풀이하는 다른 시각도 있다. AFP 통신은 "일라리오노프가 그동안 푸틴 행정부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와 정부 내부에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영향력을 잃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푸틴은 서방 국가와 기업들의 불안감을 덜어 주기 위해 그를 간판 인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일라리오노프는 2000년 경제보좌관이 돼 한때 경제개혁 정책을 주도했으나 크렘린 내부에서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유코스의 자회사 강제 매각 당시에는 "국가 통제 경제로의 회귀"라고 비판했다.

그 결과 G8 러시아 측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 들어 가스프롬(국영 석유회사)이 러시아 최대 부호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대주주로 있는 시브네프트(석유회사)의 지분을 매입한 데 대해 "2005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드는 주장들을 펼친 것이다.

그는 21일 기자회견에서 비난 수위를 더 높였다. "러시아는 올해 다른 나라로 변했다. 러시아에는 더 이상 민주주의도 자유도 없다"고 개탄했다. 이 발언이 끝내 그의 사임을 초래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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