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급 古書 20여권 모교에 기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버지는 고서(古書)를 자신이 몸담었던 대학에 기증하고, 자녀들은 그 책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했다.

올 초 정년퇴직한 계명대 문헌정보학과 김남석(金南碩.65)명예교수가 최근 평생 수집한 고문헌 26권과 전공서적 1천5백권을 이 대학 동산도서관에 내놓았다. 또 그의 자녀들은 책 관리기금으로 5천만원을 기탁했다.

金교수가 기증한 책 중에는 보물 960호로 지정된 것과 동일한 판본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비롯해 서산대사의 저술을 한글로 번역한 '선가귀감언해(禪家龜鑑諺解)', 명나라 유학자 설선(薛瑄)이 지은 '설문청공독서록(薛文淸公讀書錄)', 16세기 초 금속활자인 갑인자로 찍은 '사기(史記)', 지금까지 나온 대구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대구읍지(大丘邑誌)', 1597년판 라틴어 기독교 교리서 등이 포함돼 있다.

金교수는 "어렵게 구한 책이라서 애착이 가지만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기증하고 나니 딸을 시집 보낸 것 같은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계명대는 기증식이 있던 지난 20일 그의 호를 따 동산도서관 한적실(漢籍室)을 '벽오(碧梧)고문헌실'로 명명하고 '벽오문고'를 따로 마련했다.

도서관학을 공부한 金교수는 "기증을 앞두고 책 기증에도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아무리 소중한 책도 기증으로 끝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무리 귀한 책이라도 그 가치를 지키려면 관련된 새로운 책이나 자료가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金교수의 이런 뜻을 알고 부부의사인 딸 정희(40)씨와 사위 이원기(42.이원기내과)씨, 아들 건우(36.현대모비스 연구원)씨가 벽오문고의 관리와 새로운 자료 보충을 위해 관리기금을 내놓았다.

1961년 이 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한 金교수는 63년 모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계명문화대학을 거쳐 계명대에서 30년 가까이 후학 양성에 힘써 왔다. 그는 회갑에 맞춰 제자들을 위해 1억원의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