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성장영화라 하기엔 '성장의 기술' 이 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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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싸움의 기술

대화와 협상을 부르짖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일 테지만, 인터넷에서 '싸움 잘하는 (방)법'을 두드려보라. 1만여 건의 질문이 검색된다. 상당수가 주먹싸움에서 지지 않는 비결을 묻는 어린 학생들의 글이다. 물리적인 힘의 우위는 성장기,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결코 무시못할, 때론 결정적인 위계질서의 틀이 되곤 한다. 물론 '애들 싸움'이 '학교폭력'이 되면 심각성이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교복 입고 폭력 휘두르는 영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말 많은 발상이 나온 것이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싸움의 기술'(내년 1월 5일 개봉.감독 신한솔)의 제목과 설정은 일단 이런 맥락에서 두루 눈길을 끌 만하다. 허구한 날 동급생들에게 두들겨 맞던 고교생 병태(재희)는 동네 독서실에서 빈둥거리며 지내는 아저씨 판수(백윤식)가 대단한 고수임을 알고 가르침을 졸라 나름대로 훈련을 시작한다.

이 전개과정은 특히 판수라는 인물의 됨됨이에 힘입어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폭력배를 한방에 제압하는 환상적인 싸움실력을 지닌 판수는 평소에는 후안무치하고 철 안 든 애 같다. 이 기묘한 인물에 이렇다할 배경설명 없이도 입체감을 갖게 하는 것이 백윤식의 연기다. 여느 배우라면 뜬금없이 들릴 대사라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설득력있는 웃음을 낳는다. '지구를 지켜라'와 '범죄의 재구성'을 거치면서 쌓인 관객의 기대감 대로다. 빨래짜기.동전던지기 등 '생활의 기술'을 '싸움의 기술'로 전용하는 판수의 가르침 역시 재밋거리다.

이런 코미디적인 요소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잦아지는 조폭 혹은 학생들의 싸움장면은 지나치다 싶게 폭력적이다. 15세 관람가를 겨냥해 만든 영화로는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여럿이다. 참고로, 이는 기자 시사회에서 선보인 판본을 토대로 한 의견이다. 실제 관객이 볼 영화는 이보다 폭력.욕설 장면이 3분가량 삭제됐다. 18세 등급 판정을 두 차례 받았던 이 영화는 이런 삭제과정을 거쳐 최종 15세 등급이 됐다.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의 강도에 비하면, 드라마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도 성장영화로서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 병태를 두들겨 패는 동급생들은 지극히 평면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데 그친다. 병태가 만날 얻어맞으면서 마음속에 쌓인 두려움을 스스로 털어내는 계기 역시 점증하는 폭력의 강도가 주된 동력으로 그려진다. 고교생 관객까지 겨냥한 영화인 만큼 병태가 암만 싸움 실력을 쌓은들 '친구'(18세)처럼 직업폭력배가 되거나,'말죽거리 잔혹사'(18세)처럼 장렬한 싸움 끝에 학교를 뛰쳐나가지는 않는다. 결국 병태의 성장담으로 영화의 지향점이 모아지는데, 그 지향에 이르는 길 역시 관객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평이한 방법이라는 게 아쉽다. '싸움의 기술'만이 아니라 10대 소년의 '성장의 기술'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더 흥미로웠을 영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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