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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욕지족 하는 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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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캐터린은 젊은 사람답게 개방적이었다. 보통 벨기에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무표정이고 무척 폐쇄적이어서 외국인들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다. 그런데 그녀는 나와 동석하기를 원했다. 갓 스무 살을 지난 듯한 그녀는 지금은 장난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1월이면 덴마크의 어느 가정에서 4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맡아 떠난다고 마냥 즐거워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장난감 가게의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정규직을 갖게 된 셈이다. 어린 나이에 4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고 대답했다. 소박하지만 구김살 없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손질하지 않은 머리에 수수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좇고 있는 빛깔 좋은 조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생의 만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높은 학력과 부와 명예를 지니고도 행복해 할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는 우리는 가장 화려하게 사는 듯하지만 진정 초라한 삶을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욕지족(所欲知足). 이는 많은 것을 획득했다고 가져지는 마음이 아니다.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에서 온다. 흔히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표현하지만 이 말을 자신의 삶에 실천한 사람은 드물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방거사(龐居士)라 불리는 재가신자가 있었다. 당시 남부럽지 않은 부호였던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전 재산을 수레에 싣고 가서 근처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호수에 던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보시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원수' 같은 재산을 남에게 안겨 불행을 초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호수에 버리기로 결심했다. 전 재산을 버리고 호화로운 저택을 떠난 그는 딸과 함께 조그마한 오막살이에서 대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면서 여생을 보냈다.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그의 인생을 전환시켜 재산을 버릴 결심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밝힌 곳은 없다. 하지만 여생을 대조리를 만들면서 산 그의 발자취에서 미루어 본다면 그는 분명 욕망이 끝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리라.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것, 오랫동안 잃어버린 자신의 행복을 되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방거사일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땀방울 맺혀 이룬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마음에서 행복한 삶이 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끝없는 욕망을 억제하기 어려울 뿐이다. 욕망을 억제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욕망은 욕망으로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기면 저절로 사라진다.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빈 것에서 충만을 느끼는 마음이 욕망의 천적인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욕망을 버리려고 노력하기보다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소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