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금요일] 왕족엔 금지됐던 자리 ‘사우디 석유장관’ 이번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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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석유 황제’의 퇴장은 쓸쓸했다. 1986년 10월 29일, 24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으로 일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던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가 왕관을 내려놨다. 야마니는 자택에서 친구들과 카드 게임을 하던 중 사우디 TV 뉴스에서 자신의 면직 소식을 들었다. 사실상 경질이었다. 세계 원유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미스터 오일’이 무대를 떠났다. 석유 정책을 둘러싼 파드 국왕 및 왕족과의 갈등이 이유였다. 파드 국왕은 7명의 동복형제와 연합해 권력을 잡았다. 당시 이 형제 연합을 어머니의 이름을 따 ‘수다이리파(派)’라고 불렀다. 파드 국왕과 동복형제들은 구매가의 10~15%에 이르는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대형 항공기와 전투기를 샀다. 구매 대금은 원유를 파내 암시장에서 팔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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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니는 반발했다. 국제 정세와 시장 상황, 수요와 공급 규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야마니가 좌시할 수 없는 원유 시장 교란 행위였다. 상황도 좋지 않았다. 80년대로 접어들며 공급 과잉으로 유가는 하락했다. 급락을 막기 위해 야마니는 83년 OPEC 회원국을 설득해 생산량을 할당했다. 배럴당 29달러를 유지하려는 전략이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산유국은 경쟁적으로 원유를 퍼냈다. 85년 3월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암시장에 원유가 풀리면 기름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돈에 눈먼 국왕은 야마니를 압박했다. 증산과 유가 인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고 주문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왕에 맞선 ‘미스터 오일’은 내쳐졌다.

 사우디 최초의 국제변호사인 야마니는 3대 국왕인 파이살의 눈에 들어 ‘검은 황금’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장에 발을 들였다. 62년 2대 석유장관이 된 뒤 특유의 친화력과 냉정한 판단력으로 이내 세계 원유 시장의 거물이 됐다. 조정과 중재를 통해 60년 창설 이후 이름뿐이던 OPEC의 영향력을 키웠다. 73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취한 서방국가에 대한 금수조치로 그는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야마니’라는 이름이 세계 석유 정책의 동일어가 된 건 이때부터다.

사우디 석유장관은 한 나라의 각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랍권의 맏형으로 OPEC을 주도한 사우디는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스윙 프로듀서(생산을 조절해 유가를 조정하는 역할)로서 국제 유가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 사우디 석유장관이 ‘석유 황제’로 불리는 이유다. 석유 무기화를 주도했다는 비판에도 야마니는 단일 상품으로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름값을 무리 없이 조정해왔다. 세계 유가의 수호자였던 셈이다.

 그 배경에는 왕족과 민간 전문가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사우디의 석유 정책이 있다. 석유는 사우디 왕실의 돈줄이자 기반이다. 제프리 로빈슨은 『석유 황제 야마니』에서 “32년 이븐 사우드가 사우디를 건국했을 때 그의 재산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대가로 영국 정부에서 받는 연금 6만 파운드가 전부였다”고 썼다. 하지만 모래사막에 세운 사우디 왕실은 세계 최고 부자의 대열에 올라섰다. 사막의 기름이 검은 황금이 됐기 때문이다.

 석유는 사우디의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사우디 왕족은 석유를 세심하게 다루었다. 여기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적용됐다. 왕족이 욕심을 부려 석유 산업을 망치는 걸 막기 위해 석유장관 자리는 민간 전문가에게 맡겼다. 사우디의 어떤 왕족도 석유장관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60년 석유부가 생긴 뒤 네 명의 장관은 모두 민간 전문가였다. 로이터통신은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고 석유 정책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해 왕족을 석유장관에서 배제시켰다”고 보도했다.

 파이살 국왕의 선견지명도 있었다. 제프리 로빈슨은 “파이살 국왕은 석유장관이 지켜야 할 국제적 위상과 독특한 처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왕족에게 맡기지 않았다”고 했다. 왕족은 면직이 어려운 데다 석유장관 교체가 야기할 국제적 파장을 우려해서다. 덕분에 사우디 석유장관은 왕실의 이해관계와 경제 논리,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석유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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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 알나이미(80) 현 석유장관이 유가가 반 토막 나는 출혈을 감수하며 미국 셰일 업계와 치킨게임을 펼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러한 노선 덕분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에서 유가는 원칙적으로 왕족과 업계 관계자, 국왕이 참가한 최고석유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알나이미 석유장관이 권한을 더 가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견제와 균형’ 노선이 무너질 조짐이 엿보이면서 세계 원유 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최초의 왕족 석유장관이 탄생할 가능성이 대두돼서다. 진원지는 ‘수다이리파’의 막내로 지난 1월 왕좌에 오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다. 살만 국왕은 경제 권력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냈다. 석유 정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던 ‘석유위원회’를 없앴다. 대신 경제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장으로는 자신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을 임명했다. 이와 함께 세계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를 석유부에서 떼어 내 경제위원회 직속으로 배속하고 아람코 회장에는 칼리드 알팔리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를 임명됐다. 선례대로라면 알팔리 아람코 회장이 알나이미의 후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종전에는 아람코 회장과 석유장관은 겸직이었다.

 그런데 구도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알팔리 회장이 보건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석유장관으로 가는 길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대신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살만 국왕의 또 다른 아들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55) 왕자가 석유부 차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압둘아지즈 왕자가 석유부 차관이 되면서 그가 곧 석유부 장관으로 올라가고 알나이미 등 구(舊) 세력이 물러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6월 OPEC 회의 이후에 알나이미 장관이 물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알나이미 장관은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유가 하락기에도 인위적으로 원유 감산을 하지 않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전략을 중시했다. 그러면서 OPEC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유연 전략도 펴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 역사상 첫 왕족 석유장관이 탄생하면 석유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왕족의 이익만을 위한 일방주의가 판칠 우려가 커진다. CNBC는 “불확실성이 석유 시장을 강타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반 토막 난 유가로 인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커진 상태다. 예멘 공습 등을 주도하면서 막대한 군비도 필요하다. 이런 때 사우디 왕실이 돈을 확보하기 위해 유가를 배럴당 70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국제 유가가 떨어졌다가 갑자기 확 오르는 등 변동성이 커지면 세계경제는 또 출렁일 수 있다. 슬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원유(WTI) 값은 올 들어 가장 높은 배럴당 60.9달러에 거래됐다. 세계 석유 전문가들은 사우디 석유장관으로 왕족이 등장할지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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