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문가가 말하는 '취업생들의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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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그렇다면 눈높이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유 팀장은 "먼저 자기 분석이 필요한데 기업 인사 담당자의 눈으로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백 건의 취업 컨설팅을 해온 유 팀장으로부터 구직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다섯 가지에 대해 들어봤다.

◆ "눈높이는 낮추는 것이다"=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씨는 어학능력이 우수했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누가 지방대 출신을 뽑아주겠나'라며 중소기업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다. 김씨는 우연한 기회에 학교 취업정보실 상담을 통해 진로를 수정했다. 어학실력이 있고 마케팅 분야에 장점이 있다는 상담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용기를 얻은 김씨는 외국계 기업에 지원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눈높이는 기대 수준을 내리는 것뿐 아니라 올리는 것도 포함된다. 최근 학력이나 나이를 덜 따지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또 학점이나 외국어 점수는 기준만 통과되면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한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지방대 출신을 선호한다고>

◆ "눈높이를 조절만 하면 당장 취업할 수 있다"=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박모씨는 1년 넘도록 취업을 못했다. 원서를 낸 곳만 50군데가 넘는다. 그래서 방향을 사무직에서 생산직으로 바꿨다. 눈높이를 조절했어도 박씨를 받아주는 기업체는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박씨는 경리회계를 배웠다. 평소 숫자감각이 뛰어난 점을 살린 것이다. 자신의 적성을 찾은 박씨는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눈높이 조절은 희망 기업 규모나 연봉 수준을 내리거나 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 취업 직종을 선택하는 것도 눈높이 조절이다. 상담 등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 좋다.>

◆ "눈높이를 낮춰 입사하면 인사 담당자가 좋아한다"=서울 소재 대학 출신의 이모씨는 올해 초 한 중소기업에 지원했다. 대기업 공채에 떨어진 뒤 눈을 확 낮춘 것이다. 면접에서 인사 담당자는 이씨에게 "지원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그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의 비전이 밝지 않다고 판단한 이씨는 3개월 만에 퇴사한 뒤 다시 구직 전선에 나가야만 했다.

<기업체는 수준에 맞는 인재를 원한다. 특히 조기퇴사율이 높은 요즘 더 그러하다. 올해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취업자 441명 중 83%가 이직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업무능력을 갖추고 만족하며 일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하향 눈높이로 취업했다고 회사가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다.>

◆ "눈높이가 높은 것은 문제다"=지방대 경영학과를 나온 최모씨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그러다 한 대기업에서 지방대 인재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최씨의 토익점수가 약간 모자랐다. 학원에 다니면서 토익점수를 올린 최씨는 결국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눈높이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그러나 본인의 스펙(학력.학점.외국어 점수 등)과 희망하는 일자리의 차이가 심하지 않을 경우 약간 눈높이를 높이는 더 좋다. 어느 정도 취업 준비 기간을 두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된다. 적당히 눈높이는 자기 계발의 동기가 되며 일자리에 대한 만족을 준다.>

◆ "눈높이를 낮춘다는 것은 중소기업을 가는 것이다"=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강모씨는 눈을 벤처기업으로 돌렸다. 수차례 도전 끝에 견실한 벤처기업의 인사담당자로 취업했다. 강씨는 회사의 대우가 좋고 실무에서 자기 계발 기회가 많아 벤처기업 취업에 만족하고 있다.

<근무 조건은 대기업에 조금 못 미치지만, 개인의 능력 계발 기회가 많고 회사의 발전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이 많다. 중견기업을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철재 기자

이렇게 들어갔죠 - 취업생

올해 초 경희대 중문과를 졸업한 김기연(24.사진)씨는 '눈높이 취업'에 성공한 경우다. 김씨는 지난 7월 피부관리 마사지기 등을 제조하는 벤처기업 ㈜아롱엘텍의 해외 마케팅 업무직에 합격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업전선에 뛰어든 지 1년여 만이다.

김씨는 "처음에 일단 대기업만을 골라 지원했고,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경기도가 주관하는 취업 지원프로그램인 '경기 청년뉴딜'에서 컨설팅을 받은 뒤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김씨는 상담을 통해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 어학 전공인 그는 막연히 대기업 무역 관련 부서에서 일하겠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외국어 구사.활발한 성격.원만한 대인관계 등으로 보면 김씨는 해외 마케팅이 더 적합하다는 컨설팅 결과를 받았다.

이후 김씨는 지원 회사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으로 넓혔다. 해외 마케팅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신입사원이지만 짧은 준비를 거쳐 실무에 뛰어들게 됐다"며 "다양한 업무를 해보면서 자신을 키워보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이렇게 뽑았죠 - 인사담당

대기업에 취업할 때 학력.학점.외국어 점수 등 소위 '스펙'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CJ의 고성훈(사진) 채용담당 매니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스펙'을 보는 게 대기업 입사 전형의 전부였지만 요즘은 역량과 자질을 우선 따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직무별로 공채를 하는 CJ의 경우, 실무진이 서류 전형에서 자기 소개서를 보면서 지원자의 됨됨이를 살펴본다. 여기서 지원자가 직무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을 얼마나 쌓았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고 한다. 면접에서도 또 한번 이런 점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고씨는 한 예로 명문대 출신에 학점 만점, 토익 만점의 지원자가 낙방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지원자는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느라 직장 생활에서 정작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네트워크 역량, 분석적 의사 결정력 등을 기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씨는 또 "요즘 구직자들이 기업마다 구하는 인재상이 다르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평판이나 이미지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해당 기업에 적합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지원한다는 얘기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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