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의 오늘 미술관] 새로운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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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 펜과 수채, 이스라엘 박물관, 예루살렘.

이 어수룩한 그림을 현대인들은 파국의 천사로 본다. 제1차세계대전(1914∼18)이 끝난 뒤의 그림으로,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아래 글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천사다.

“그림의 천사는 자기가 줄곧 보던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이런 모습일 게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는 온갖 난파된 잔해를 쌓아 올리며, 그의 발 앞에 내던져진 대참사를 목격한다. 천사는 거기 머물며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던 것들을 복구하고 싶다. 폭풍으로 날개를 접지도 못한 채, 그저 미래를 향해 날아가면서 쌓이는 과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9일 개막하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한 세기 전의 이 천사를 다시금 소환했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던 과거의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파국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천사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 뉴저지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오쿠이 엔위저(51) 감독은 탈식민주의에 관심이 많다. ‘모든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 실상 그가 바라보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파국이다.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제시하며 그는 “우리 시대의 현대의 불안은 어떻게 이해되고, 평가되고, 명료해질 것인가?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기술 사회에서 디지털로, 대량 이주에서 대량 이동, 환경재난과 인종 갈등은 예술가, 작가, 영화 제작자, 배우, 작곡가, 음악가들에게 새롭고 매혹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왔다”고 설명한다.

클레의 이 아이 같은 그림이, 파국을 보기만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 같은가.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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