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의원 입법 실상은 경찰 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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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심의한 국회 행자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은 여러 의문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추진 경위다. 당초 이 법안은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이 6월 13일 처음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처리과정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주도했다. 속기록에서 열린우리당 최규식.강창일 의원은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의 반대 의견을 "경찰 하위직의 어려움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여러 차례 일축한다.

의원입법으로 추진된 과정과 늦게 가세한 여당이 법안 통과에 적극성을 보인 이유가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국회 주변에서 제기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적극성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속도 조절을 요구할 정도다.

두 번째는 법안 시행 시기를 경찰 쪽의 요구를 받아들여 내년 인사가 있는 시점으로 못박은 배경이다. 속기록에서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시행 시기를 6개월 정도 여유를 두자고 제안하고 있다. 경찰에 특혜를 주는 법안이란 이유에서다.

여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12월 8일 국회 본회의 처리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이다. 그는 국회 예결위원장이다. 강 의원은 26일 "실적과 관계없이 연한만 채우면 자동 승진한다면 누가 열심히 범인을 잡겠느냐"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5년간 3006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한 이 법안에 대해 여당 소속 의원이면서 전체 예산을 심의하는 예결위원장조차 동의할 수 없었다는 모양이 된다. 더구나 청와대 일부 참모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청와대와 협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경찰의 상급기관인 행자부 장관도 곤란하다는 의사를 밝혔음이 속기록에서 드러났다. 늘 긴밀하게 협의한다는 당.정.청에서 어떻게 이런 따로따로 현상이 벌어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법안 처리에 간여한 사람들이 내놓은 해답은 "의원입법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부다. 하지만 행자위 소속인 유인태 의원은 "분위기상 찬성했지만 공무원이 의원들을 쫓아다니며 민원을 하고, 의원들이 표를 생각해 들어주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결국 형식만 의원입법이지 실상은 '경찰입법'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행자위 전문위원도 "신중 검토" 요구=법안 심사 과정에서 행자위 전문위원도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김종현 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서 "민생치안 강화를 위해선 실무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며 "근속 승진을 확대하면 경사 이하 (실무) 인력의 부족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경찰과 직급체계가 유사한 소방.교정 공무원들의 비슷한 요구도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박승희.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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