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차별과 편견 뚫고 솟구친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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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안성식 기자]

한국인 최초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
1933년 일본 도쿄 근교 산중턱에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면서 30대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왜 굳이 힘들고 위험한 비행사의 길을 선택했을까.
조국도 아닌 일본에서 여성으로서, 조선인으로서 온갖 차별을 견뎌가며 이루려던 것은 무엇 이었을까.

영화 '청연'(감독 윤종찬)은 그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는 것, 그게 삶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하고 달콤했던 순간은 하늘로 비상할 때였노라"라는 그의 말은 그런 일생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가 탄 비행기 이름이면서 영화 제목인 '청연'(푸른 제비라는 뜻)이란 단어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자유롭게 살다 간 그의 운명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2003년 '싱글즈'(감독 권칠인) 이후 2년 만에 주인공 경원 역으로 돌아온 장진영(31.사진)은 "연기를 하면서도 그가 가진 열정의 크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편견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심했던 시대였죠. 그런 시대에 어떻게 그런 원대한 꿈을 갖고 살 수 있었는지 아직도 궁금해요."

영화는 대구 출신인 경원이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풀어나간다. 가난 탓에 처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택시회사에서 정비사 겸 기사로 일하는 고된 유학생활이었다. 그렇게 5년이나 고생한 끝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비행사 자격증을 딴다.

"본명은 경원이 아니라 원통이라고 해요. 아들을 낳아야 하는 데 딸을 낳아 원통하다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라죠.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험난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일본인들에게, 남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갔다고 해요."

경원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지금까지 다른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장관이다. 특히 수천m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땅으로 수직하강하며 비행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은 경원의 영광과 짧은 생애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비행 장면은 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엘미라지와 빅스카이렌치에서 촬영됐다. 영화 '진주만' 등에서 활약한 할리우드 항공촬영팀의 도움을 받았다. 1000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비행대회 장면 촬영은 중국 창춘(長春) 부근의 알타흐어 비행장에서 진행됐다.

윤종찬 감독은 "비행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별로 선례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난감한 심정이었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고 소개했다. 그는 연출을 위해 하루 10시간씩 헬기를 타고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열성을 보였다고 한다.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드라마를 집어넣고,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흐르는 감정의 굴곡이나 착잡한 마음 등을 잡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위험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지는 않았다. 대신 비행기 모형이 설치된 세트장에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조종 장면을 촬영했다.

장진영은 "비행 장면을 위해 한 달 내내 경기도 양수리 세트장에서 찜통 더위와 먼지와 싸워야 했다. 우천비행을 촬영할 때는 일주일 동안 비를 맞았는데 100년이나 됐다는 군용점퍼에서 곰팡이가 새어나와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다"고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다소 약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순제작비 95억원의 대작답게 볼거리는 화려하지만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흐른다. 드라마의 중심축은 경원과 지혁(김주혁)의 사랑 이야기인데 그다지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장거리 비행을 위해 사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경원의 태도 때문이다. 경원의 선머슴 같은 성격도 다소 어색하게 비친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지지 않으려는 치열함보다는 여자답지도 남자답지도 않은 어중간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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