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5) - 제80화 한일회담(264)조문화작업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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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일회담은 「4· 3합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양측은 합의요강을 조문화하는 절차를 통해 세부사항을 실질협의하면 끝나는 것으로 인식했다. 나와 「다까스기」 「우시바」일본측수석및 차석대표는 일단 5월15일, 늦어도5월20일께는 정식조인식읕 거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협정문 작성에 서로 노력키로 합의했다.
우리측은 특히 5월중순으로 예정된 박대통령의 방미전에 조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강력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4·3합의후 양측대표들은 5월중순까지 협정문서의 완료 및 조인식 거행을 낙관했다.
그러나 그런 낙관 분위기와는 달리 국내의 반대 분위기는 극한으로 치달아 정부로서도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반대의 최대 대상이「굴욕적인 어업문제합의」였다.
정치단체뿐 아니라 어민등 국민들로부터 거샌 반발을 받고 있었다. 한일회담 반대투쟁이 민정당과 민주당을 통합시켜 민중당으로 발전시키는 계기(5윌30일)를 주었을 정도였으니 당시의 치열한 분위기가 짐작될 것이다.
정부수뇌들은 이같은 반발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4·3합의부분중 어업관계를 보완하는 작업을 했고, 그것을 관철시키라고 새 훈령을 나에게 보내왔다.
그 훈령은 요컨대 4·3합의를 상당히 수정하는 것으로 공동규제수역내의 일본 어선조업을 대단히 규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안을 바로 일본측에 제시한다면 그들의 반발이 강력해 협정문안작성에 당장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수석회담및 막후절충을 통해 슬쩍 언급해 그들의 반응을 떠보았다.
일본측은 예상대로 그게 정식 제안이라면 4·3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로 말미암아 회담은 공전을 거듭했고 이 여파는 법적 지위및 청구권 관계· 문화재 관계 위원회에도 미쳐 1개월이상 『4· 3합의보완이다』 『합의 위반이니 철회하라』 는 쌍방간의 지리한 입씨름으로 회담 전분야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5월중순 조인목표는 이 때문에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나는 5월27임 수석회담을 통해 『어업문제때문에 다른 현안에 관한 토의도 전혀 진척이 없음은 유감이며 현상대로 가면 6월말에도 타결이 어렵겠다』 고 지적하고 일본측의 성의를 적극 촉구했다.
「우시바」 차석대표는 이에 대해 『차라리 양측이 지금 내놓은 안을 모두 제쳐놓고 4·3합의를 기초로 조문화하자』고 제안했다.
한일 양측은 각기 5윌과 4윌 어업협정안을 상대방에 제출했던 것이나 일본측의 무합의로실질토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한 득책이라고 판단했으나 단서를 달았다. 나는 『만약 일본측이 한국측 보완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한 조문화에 응할 수 없지만 조문화 과정에서 한국측이 보완사항을 포함시킨 문안을 내고 이에 대해 토의한다는 양해 아래서라면 언제든지 조문화에 착수해도 좋다』 고 제의했다. 일본측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오랜 교착상태 끝에 해결 기미가 보였던 것이다.
나는 6윌2일 「시이나」 외상과 만나 앞으로 4,5일내에 조문화 작업의 결론을 내기로 의견일치를 보았고, 또 이를 위해 양측대표가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동경시외에서 합숙하면서 협의키로 합의했다.
교외의 한적한 곳에 양측대표단을 가둬 놓고 밤낮으로 협의, 이견을 해소하며 조문화 작업을 마치자는 계획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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