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황우석 파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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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사위의 중간조사 결과 황우석씨의 조작극의 일부가,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할 국제적 사기이벤트로서의 구성요건을 충분히 갖춘 내용들이 밝혀졌다.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특별하고 거대한 희망을 주었던, '황우석 희망'이 결국은 '조작된 쑈'와 잘해야 신용도 낮은 약속어음 정도 밖에 안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바야흐로 '황우석 쑈'는 허탈과 불안 속에 종결되어가는 듯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과학계 최대의 세계적 사기이벤트 '황우석 쑈'를 탄생시킨 우리사회의 토양과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는 우리 정부와 학계, 연구계의 경박한 풍토이다. 즉, 조급하게 가시적인 결과와 성과만을 바라는 한탕주의와 업적주의이다. 이 뿌리는 해방 이후 아사리판에서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재산과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먼저 보고 차지하는 놈이 임자'라는 식으로, 그리고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나도 한건만 히트 시키면 된다.' 는 사고방식이 배태되고 만연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즉, 한건만 제대로 히트시키고 굳혀나가면, 그 과정에서 설사 잘못이 있더라도 사소한 일이나 과거사로 간과되거나 양해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둘째, 정치판에는 물론, 학계와 연구계에 까지 만연되어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겉포장과 껍데기 권위와 외양의 화려함에만 초점을 맞추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천박한 풍토이다. 황씨는 이 같은 풍토와 메카니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시스템의 허점과 틈새를 교묘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했다고 생각된다. 천박한 업적주의와 한탕주의를 기조로 하는 우리정부의 과학지원정책을 겨냥한 황교수가 치밀하게 조작된 과학적 성과와 청사진으로 언론과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외곽에서 낚시밥을 던졌고, 이에 혹한 경박한 정부가 낚시바늘을 물고 마치 코스닥에 묻지마 투자하듯이 몰빵식 예산지원을 한 꼴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황씨는 과학자 보다는 정치가나 흥행사가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째, 위와 같은 풍토가 대학과 연구소내의 학맥과 인맥으로 엮인 패거리 문화와 결합되어 거의 마피아 집단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로 까지 진행되 오도록 수십명에 달하는 황교수의 연구팀원들중 적지 않은 수의 연구원들이 알고도 묵시적으로 협조하거나 방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이 같은 상태라면, 소위 과학과 학문에 종사하는 이들의 가치관과 마피아 패밀리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동료간의 의리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다른 게 무엇인가?

무척 씁쓸하고 허탈하지만, 그래도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니, 설사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생산적인 교훈을 추려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황씨의 조작극 이벤트가, 우리사회와 대학, 연구소의 구조적인 문제와 해악들을 제대로 진단, 처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디지털국회 박인성]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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