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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기독교 2000년, 광기를 넘어 구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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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예수는 2000년 전 유대 사회에서 ‘의인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닌,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 오신 하느님’을 강조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편견에 맞섰다. 15세기 네덜란드 그림인 ‘설교하는 그리스도’.

신자이든 아니든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실 기독교는 탄생 이후 숱한 곡절을 겪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지 종교전문기자인 지은이는 기독교라는 종교정신 속에서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이름을 빌어 부끄러운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며 기독교 2000년을 입체적으로 조감한다.

우선 이단을 골라내기 위한 중세의 종교재판은 권력이 민중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변질했다. 광기와 야만의 살육전으로 변질돼 지금도 문명간 오해와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는 십자군 전쟁도 빼놓을 수 없다. 서양인들이 신대륙 발견이라고 말하는 사건 이후 바로 그 신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복음을 앞세운 침략에 시달렸다. 로욜라 등이 아시아에서 현지 문화를 고려한 포교를 실험했으나 교황청은 오랫동안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기독교가 그 모순을 내부에서 치유하는 자정력을 갖췄다는 데 주목한다. 면죄부를 팔아 성전을 짓겠다는 교황청의 뻔뻔함에 맞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중요한 사례다.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개신교로 민중이 기독교의 주인공으로 비로소 복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제들이 독점해온 신학 논쟁 참여는 물론 심판자 하나님을 비로소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계몽주의와 대혁명의 시대였던 19세기에 교황청은 자유주의.과학만능주의.근대성을 부르짖던 당대의 지식인과 충돌했다. 교황청은 눈과 귀를 닫은 것처럼 보였지만 영구적인 장애는 아니었다. 한 세기가 지난 20세기 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시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다시금 순교와 봉사로 영성의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됐다.

인종차별에 맞선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희생,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와 싸운 로메로 신부,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한 투투 주교 등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됐다. 나치의 폭력에 굴하지 않았던 본 회퍼 목사의 용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의 절대 빈곤과 싸웠던 테레사 수녀의 삶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민중과 함께하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침 내일은 크리스마스. 때 맞춰 출간된 이 책은 기독교 2000년이 세상을 어떻게 만나고 부딪쳐왔는지를 다양한 방향에서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역할을 할 것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기독교 중심주의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울림은 기독교를 넘어 모든 종교에 대한 암시로 작용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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