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 넘지 못한 선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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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달 남짓 협상 끝에 「타결」 된 국회의원선거법 개정내용을 보면 현행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되 『공명선거 보장』이라는 야당 측의 최소한의 체면치레로 사실상 타결을 본 느낌이다.
대국적이고 원칙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민정·민한 양대 정당의 당리와 선거전략에 집착한 합작품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이번 선거법협상의 쟁점은△1구2인제로 돼있는 선거구 개정문제△전국구 배분 율△선거구 증설△공명선거를 위한 선거운동 관리 등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정당추천선관위원이 개표구선관위까지 참여할 수 있게 된 것과 투·개표 참관인의 증원과 교체, 투표함 운송 때 동승 참관인 수를 늘리는 등 공영선거 보장이라는 장치 면에서는 일단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동안 나눠먹기 식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1구2인제를 놓고 민정· 민한 양당은 실리를 좇기에 급급한 나머지 명분과 원칙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민정당이 야당측 분·증구 요구와 전국구 배분방식 개정 요구를 봉쇄하기 위해 1구1∼3인제를 들고 나와 방패막이를 한 것은 전략적인 면에서는 묘수요, 성공을 거뒀다해도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책임이 있는 집권당으로서 떳떳한 명분을 내세울만한 행위는 아니다.
민한당도 민정당이 ,1구1∼3인제 선출방식을 내놓자 선거구 개정문제나 전국구 배분방식 등에 관해서는 거론조차 못하고, 공명선거 보장문제로 협상방향을 틀어버린 것은 협상 상대방의 책략에 너무 쉽게 말려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선거법 협상대표들이 『합의 못한 투표권 평등화 문제는 계속 협의하여 오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 자신도 선거구 문제에 아직도 개선돼야할 점과 찾아야할 명분이 있음을 시인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그들의 최소한의 양식과 원칙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법 개정협상은「타결」이 아니라 중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거법 개정의 미진한 점을 오는9월 정기국회에서 다룬다는 그들의 말이 실질적으로는 빈말일지라도 개선해야할 점이 있음을 시인하는 셈이 된다.
선거법이 총선을 눈앞에 둔 정당의 입장에서 당리당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으므로 이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유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발휘하는데 초점을 두어야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당리의 뒷전으로 돌려져서는 안될 일이다.
지역 대표성을 살리려면 지나친 광역화는 피해야한다. 인구가 늘었으면 선거구도 늘어야 할 것이며, 의원수가 많다고 여겨지면 전국구 의석 수부터 조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합리적인 법 아래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자유롭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선량이며, 이들로 구성되는 정당·국회만이 국민의 신뢰와 수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협상은 이러한 차원에서 앞으로도 계속되어야할 과제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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