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6)|제80화 한일회담(255)|기본조약 가조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비록 주어가 없는 흠은 있었으나 불행한 과거를 깊이 반성한다는 「시이나」외상의 착한성명은 산고가 컸던만큼 국내에서도 호의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박대통령은 「시이나」외상을 접견한후 이 사람이라면 한일현안 타결은 가망성이 있겠다는 신뢰감을 갖게 됐다고 나에게 토로했을 정도였다.
「오오모리」외상비서관이 한일 현안타결의 두 요인으로 착한성명과「시이나」외상의 한국지도자들로부터의 신뢰획득을 지적했을 정도로 「시이나」외상은 박대통령등 한국지도자들로부터 믿음직하다는 인상을 꽤 강하케 남겼다.
「시이나」외상은 3박4일간의 방한기간중 이동원외무장관과 10시간반에 걸친 두차례의 공식회담과 비공식 접촉등을 가졌다.
18일 하오 열린 것 외상회담에서 「시이나」외상은 동경 실무자회담에서 대강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치권이 남한에만 미친다는 관할권 조항을넣자고 우겨 회담 분위기는 먹구름을 몰고 오는 형국이었다.
이에 우리측이 유엔결의에 명시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조항의 유엔운운 수식어를 떼자고 응수해 의견대립은 팽팽했다.
구조약 무효문제도 우리측이 「한일합법조약」 체결 이전부터의 모든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한데 비해 일본측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발효때부터 무효라고 고집해 4시간여동안 평행선만 그은채 끝났다.
「시이나」외상은 「사또」 총리에게 새 훈령을 요청했으나 그에대한 당신은 없었다.
19일 열린 2차회담에서 「시이나」외상은 막바지에 가서야 관할권 조항의 삽입은 철회하겠으니 이제는 한국측이 양보할 차례라고 나왔다.
우리측은 바깥의 반대시위와 야당측의 한일회담 반대 유세를 지적, 더이상 양보한다면 우리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설명을 잃어버린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관할권문제에서 일본측이 성의를 보인만큼 조약 무효문제에 대해 「무효임을 확인한다」 는 표현에 부사「이미」(alleady)를 덧붙이는 타협안을 제의하니 일본측은 이마저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하찮은 부사 한 단어의 추가제의로 말미암아 구조약 무효시점의 해석은 양측이 각기의 번의어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할수있게 여지가 마련됐던 것이다.
「시나이」 외상은 『총리대신의 훈령을 받아야한다』 는 참모진들의반대를 물리치고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유일합법조항은 끝내 타협을 못보고 회담이끝났다.
내일이면 귀국하게 되므로 결렬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19일밤 조선호텔에서 열린 리셉선 도중 이장관과 「시이나」외상은 나와 양국 아주국장만을 대동한채 요정 청운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정을 넘기면서 마지막 절충을 벌였다.
서로가 이렇게 결렬된채 끝난다면 한일회담의 전도는 암담하다.
어떻게든 결말을 짓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양보를 간청했다.
자정이 넘은 1시쯤 이장관은 유엔결의에 따른 수식어를 붙여 유일합법조항을 합의하자고 제의,「시이나」 외상도 이에 응했다.
서로가 고위층의 승낙을 얻는다는 전제였다.
이장관과 「시이나」외상은 부산하게 각자의 고위층에게 승낙을얻는 움직임을 상대방에 과시했다.
이래서 20일 하오2시「시이나」외상의 이한 직전 양국 아주국장이 기본관계조약에 이름 두문자(이니셜)로 서명, 가조인식을 마쳤다.
그러나 이 3박4일간에 일어나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진 이같은 장대한 드라머는 사실은 서로의 국내 정치용 연출이었다.
이미 모든 합의가 동경의 실무자선에서 이루어진 직후였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알수 있을 것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