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실시 1년…그 실태를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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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3조처(금융거래 실명화에 관한 조처·실명제)가 발의된 지 2년, 실시된 지 1년을 맞았다.
처음 7·3조처가 발의될 땐 지하경제를 뿌리뽑고 종합과세를 하기 위해 모든 금융거래엔 실명을 강제로 쓰게 한다는 혁명적인 금융조처였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과격하며 금융관행에 어긋난다는 반론 때문에 실명제의 실시시기가 늦춰지면서 알맹이도 대폭 빠졌다.
82년 말 국회를 통과한 실명법은 실명제를 포기 안 한다는 명분만 남고 당초 의도했던 시퍼런 의지는 무뎌진 엉거주춤한 것이었다.
실명제에 관한 가장 강한 반대는 모든 금융자산을 노출시킨다는데 대한 것이었는데 강제적 실명화는 연기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것은 차등과세뿐이다.
이자·배당소득을 실명으로 찾아갈 땐 소득세·방위세·교육세·주민세를 합쳐 16.75%의 세금(연간소득이 8백40만원을 초과하면 17.75%)을 물리고 가명·무기명인 때는 22.625%(24.125%)를 물리고 있다.
금융자산의 가명을 허용하는 대신 그 소득에 대해서만 50%의 세금을 더 물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85년부터는 1백%가 중과되어 무기명·가명일 때 세율은 28.5%(연간소득 8백40만원 초과 때는 30.5%)로 껑충 뛴다.
금융자산에 의무적으로 실명을 써야하는 것은 86년부터다. 사실상 실명제는 86년으로 연기됐던 것이다.
그 동안 차등과세의 결과 실명화가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정기예금·상호부금·상호신용금고예금은 대부분 실명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목돈이 많이 오가고 얼굴노출을 꺼리는 요구불예금·증권·금전신탁·단자거래는 아직도 무기명·가명이 20∼30%나 된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실명을 안 밝히겠다는 것이다.
이자나 배당소득을 좀더 물더라도 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가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물가안정·투기근절과 동시에 내년에는 세금이 더 무거워져 실명화가 가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86년 이후다.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은 86년 이후에 실명제를 의무적으로 실시키로 규정, 누구나 가명·무기명으로는 거래할 수 없게 되어있다.
실명거래가 아닌 것을 취급하게 되면 금융기관 임직원이 벌금을 물고 실명거래와 관련된 정보누설 등 행위에는 체형과 벌금을 무는 벌칙까지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86년 이후 언제 실시할지는 대통령령으로 별도 정하기로 되어있어 실시시기는 아직 유동적이다.
실명제의 전면 실시시기에 관해 재무부도 정확한 예측을 못하고있다. 실명제실시를 위한 자료의 전산화가 완벽해야 된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앞세우는 이유지만 과연 그때 가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할만한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마련될 지에 대해 아직 전망이 안 서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금융은 저금리와 실명제의 실험대였다.
돈의 흐름이 그 큰 줄기를 바꾸었다.
저금리체제가 물가안정과 기업의 원가부담 경감엔 큰 기여를 했으나 금융엔 큰 무리를 낳았다. 그 무리를 메우기 위해 더 큰 무리를 하고있다.
우선 저금리로 은행을 빠져나간 돈이 갈곳을 찾다가 완매나 부동산투기·정약산업이라는 80년대 경제의 「기형아」들을 선보였다. 이같은 뭉칫돈들이 제2금융권의 상대적인 이상비대 등을 불러온 끝에 채권입찰제실시(83년5월), 완매에 대한 세금부과(84년1월), 정약업소단속(84년6월), 양도성예금증서의 부활(84년6월) 등 정책대응을 몰고 왔다.
저금리는 또 은행수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혀 82년 12월의 년 7.6∼12% 지준부리, 83년 12월의 년 10% 지준부리라는 기묘한 「역금리」를 낳았다.
결국 「은행수지개선용」인 1.23금리조정이 「차등 대출금리를 통한 금리 자율화의 첫 걸음」이라고 포장되어 나왔다.
그나마 대출금리의 차등 폭을 두는데 몹시 인색해 어정쩡한 금리조정이 되고 말았다.
83년 1·4분기 중 1천3백4억원 증가했던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올 1·4분기 중 2천4백70억원이나 늘었다. 반면 83년 1·4분기 중 5천1백억원 늘었던 저축성예금은 2년 후 같은 기간에 1천9백억원으로 증가세가 뚝 떨어졌다.
올 1·4분기에는 긴축 속에 묶인 기업의 1년 이상짜리 구속성예금이 무려 5천7백억원이나 늘어난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 82년 6월 말 당시 국내총수신에서 66.7대 33.3, 총여신에서 76.7대 23.3이던 은행 대 비은행의 비중이 지난 5월말에는 각각 60.7대 39.3, 71.6대 28.4로 바뀌었다.
국내은행의 수지는 지난해 1·4분기 중 무려 3백60억원의 기간손실을 보였다가 역금리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1·23금리조정, 수수료율 인상 등으로 올 1·4분기에야 가까스로 3백40억원의 기간이익으로 돌아섰다.
6·28, 7·3조치의 후유증은 여전히 금융전반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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