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에 123층 현장 점검 … "노인이란 생각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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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롯데월드타워(123층) 공사현장. 정년퇴직 후 20년째 공사용 엘리베이터(호이스트) 전문가로 일한 최송본(75·오른쪽)씨가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국내 최고의 호이스트 전문가로 꼽힌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 87층. 앞으로 5년만 있으면 팔순이 되는 최송본(75)씨가 50~60대 동료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환기시킨다. “화이바(헬멧) 끈 조이고 벨트도 다시 확인해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은 개미보다 작게 보이는 고공에서 작업하는 최씨는 국내 최고의 호이스트(공사용 엘리베이터) 안전점검 전문가로 꼽힌다. 롯데그룹에서 55세에 정년퇴직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간 공사장을 돌며 계속 일했다. 롯데는 월드타워 건설을 시작하면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최씨를 다시 불러들였다. 호이스트는 공사기간 중 고장 없이 작동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최씨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2모작에 나서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60세가 되면 현장에서는 어차피 밀려나게 된다. 쟁쟁한 후배 세대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앞세워 위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갑이 지나서도 팔팔하다고 해도 저절로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체력이 있고 전문성이 있어도 적극적인 자세로 도전에 나서야 길은 열린다.

 2년 전 무역서비스 회사에서 58세로 정년퇴직해 올해 환갑을 맞은 김길섭씨. 3전4기 도전 끝에 대학 강단에 섰다. 그는 퇴직에 대비해 미리 박사 학위를 땄다. 학교에서 인생 2막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오라는 곳이 없었다. 서너 곳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했다. 비슷한 또래의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업 경력을 토대로 지원할 수 있는 산학협력 교수 자리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눈높이를 낮춰 지방 대학을 공략했다. 대한무역협회 일자리지원센터에도 취업신청서를 등록시켜 놓고 기회를 찾았다. 결국 그는 올 봄학기부터 지방대에서 무역학을 가르치게 됐다. 김씨는 “어렵게 강단에 섰으니 열심히 후학을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대한무역협회 일자리지원센터장은 “요즘엔 퇴직에 임박해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일찍 준비할수록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부지런히 찾아다닐수록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암웨이비즈니스오너(ABO) 김종수(67·오른쪽)씨와 부인 홍진희씨. [강정현 기자]

 중견기업에서 임원을 지내고 53세 퇴직한 김종수(67)씨는 퇴직 전부터 부인의 부업을 도왔다. 부인이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암웨이 제품을 마케팅하는 암웨이비즈니스오너(ABO) 일을 시작하자 김씨도 거들기 시작하면서다. 김씨는 “국민연금을 100만원 정도 받는 데다 15년 동안 네트워크 판매를 꾸준히 해 온 덕에 노후가 풍족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자본 투자가 없어 늘그막에 재무적으로 위험하지 않고 일의 성격상 사람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 항상 젊게 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며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올해 환갑인 지매란씨는 댄스 강사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오다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자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씨는 “스스로 건강 유지를 위해서라도 댄스와 에어로빅 자격증을 땄는데 이제는 강사 일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은 “고령자 스스로 노인이란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100세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강병철·조현숙·천인성·최현주·박유미·김민상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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