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인사이드피치] 227. '자립·준비·채용!' 스물네살 프로야구의 화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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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 간다….

고(故)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의 도입부가 유독 실감나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것.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레어 보기도 하고, 찢어 넘긴 달력에 담겼던 숫자들을 어떻게 보내줬는지에 대해 감상에 젖기도 하는 요즘이다.

프로야구도 열흘 뒤면 스물네 번째 해를 떠나보낸다. 1999년 이후 6년 만에 관중 300만 명을 다시 넘어선 올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 결정과 제1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참가 등 국제적인 교류에 문을 활짝 열어젖힌 올해다. 7년 동안 프로야구를 위해 일했던 박용오 총재가 물러나고, 새 총재를 물색하며 새해를 맞게 된, 그런 변화의 한 해다.

'인사이드피치'는 '스물네 살' 프로야구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립(自立).준비(準備).채용(採用)의 세 단어로 화두를 던진다.

한국 사회에서 스물넷은 일반적으로 자립의 나이다. 부모의 보호와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그런 나이다. 프로야구도 그럴 나이가 됐다. 82년 출범해 초창기에 5공화국 정부의 비호 아래 성장했던 어리광의 티를 벗고, 국민 여가 선용의 장으로 입지를 굳힌 것을 발판으로 삼아 이제 성인의 당당함으로 세상에 나갈 때다.

준비는 미래에 대한 설계의 핵심이다. 미리 마련해 갖추는 것이다. 청년에서 벗어나 성인으로 나아가는 프로야구가 내일을 위해 다져야 할 내실이다. 준비 없이 내일을 맞이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한국 프로야구가 맛보지 않아야 한다는 당부이기도 하다. 올해 '프로야구 제2의 중흥기'라는 반전을 맞이했기에 그 당부는 더 절실하다. 어느 순간 한번은 겪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작은 성공에 자만하지 않기 위해, 튼튼한 준비야말로 스물다섯 해째 프로야구가 꼭 챙기고 가야 할 덕목이다. 채용은 새 총재에 대한 가이드다. 프로야구 커미셔너는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일하는 일종의 '종업원'이다. '총재를 모셔온다'는 정서는 프로야구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어리석다. 총재는 프로야구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프로야구가 총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총재가 프로야구를 위해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주인인 8개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가 능력 있는 인사를 선정해 일을 맡기는 것 아닌가. 그래서 커미셔너는 채용돼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밝다.

이 겨울, 스물네 살의 프로야구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앞날을 설계하며 꾸는 꿈은 어떤 것인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나. 프로야구 관계자와 모든 야구인이 한 번씩은 생각해 볼 단어가 아닌가 싶다. 자립.준비.채용!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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