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여자 마음은 여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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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모조 액세서리 제조업체인 베누스주얼테크의 이미현 사장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장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동유럽이다.

5년 전부터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거래업체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매년 수십만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李사장은 그것으로 양이 차지 않아 이달 초 10여일 동안 체코와 헝가리.루마니아 등 3개국으로 시장조사를 다녀왔다.

"동유럽 하면 후진 지역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서유럽처럼 계층을 불문하고 수시로 파티를 엽니다. 여성들은 값비싼 보석보다 모조품을 애용하는 실용적인 면이 강합니다."

李사장은 특히 동유럽 여성들의 파티 용품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업체 바이어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비교적 고급 제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우리 샘플을 보고 색상과 품질에 놀라면서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거예요."

李사장은 바이어들의 이 같은 반응에 흥정을 하는 대신 "동유럽 회사들은 언제까지 부가가치가 없는 중국이나 동남아산 저가 제품을 취급할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李사장의 자신감을 믿고 헝가리와 루마니아 바이어들은 거래를 시작하자며 현장에서 3만여달러어치를 주문했다. 그는 "매년 미주와 서유럽에 1백만달러어치 이상을 수출해 왔는데 앞으로 회사 미래는 동유럽 시장 공략에 달렸다"고 말했다.

여성 기업인들이 동유럽으로 달려가고 있다. 액세서리 등 여성들을 겨냥한 제품만 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전시용품도 있고 심지어 공업용 제품까지 팔러 간다. 한국 여성기업인들의 섬세함이 동유럽 여성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2000년부터 실시한 여성 기업인 동유럽 방문 행사에는 지난해까지 20여 업체가 참가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현지 바이어와 상담이 잘 돼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등의 영향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를 겪고 있는 올해도 동유럽 방문을 희망한 업체가 13개사에 달했다. 이 중 7개 업체 여사장과 회사 관계자들이 현지를 방문, 모두 1백31건의 상담을 벌여 50만달러가 넘는 수출 계약을 했다.

미래무역의 이현숙 사장은 이달 중순 헝가리와 체코에서 고가 전략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가는 도시마다 중국인들이 남대문 시장 크기만한 저가 시장을 열고 상권을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회사가 생산하는 여성용 헤어 액세서리는 중국 제품에 비해 평균 50% 이상 비싸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팔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대신 동유럽 여성들의 취향을 좀 더 연구해 이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현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제품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좋아 체코.헝가리.루마니아에서 17개 현지 판매업체들과 협상을 벌였고 1만1천6백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맺었다. 李사장은 이들 3개국에 머물지 않고 이후 시간을 내 러시아와 폴란드까지 방문, 동유럽 시장을 적극 개척할 계획이다.

산업전시 대행업체인 이두컴 황지연 사장은 정송아 공동 대표를 보내 처음으로 동유럽 시장을 파악했는데 후진국으로 알았던 헝가리와 체코의 전시 문화가 한국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특히 헝가리의 산업전시 역사는 50년에 달하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현지에서 전시장 부품을 제작하는 5개 업체가 한국의 산업전시 업체에 관심이 많았는데 국내 관련 업체를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黃사장은 직원들을 이들 현지 업체에 보내 견적을 뽑고 있다. 헝가리 업체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한국과 함께 환경 관련 상품이나 부품 전시회를 열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여성 속옷 제조업체인 럭키사의 최춘순 사장도 5월 초 직원 2명을 보내 동유럽 시장조사를 하게 했는데 현지 여성들이 화려한 색상에 섹시한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미 현지에서 시작한 12건의 수출거래 협상은 상당히 진척됐다.

崔사장은 "서유럽 최고급 브랜드로 동유럽 현지 생산을 모두 관리하는 회사가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의 생산을 제의해 조건 등을 협상 중"이라며 "동유럽시장 진출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산업용 연마기를 생산하는 순양다이아몬드의 한묘희 사장은 체코와 루마니아의 공업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수출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두 나라에서 순양다이아몬드 제품의 수출입을 대리하겠다는 업체들이 나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패션 액세서리 업체인 인터내셔날다이아나 김수경 이사는 동유럽을 다녀온 후 이들 대부분의 국가에 의외로 상류층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최고급 브랜드 위주로 시장 공략 전략을 세웠다.

최형규 기자

<사진설명>

동유럽 시장 공략에 앞장선 여성 경영인 5명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두컴 황지연 사장·베누스주얼테크 이미현 사장·럭키사 최춘순 사장·인터내셔날다이아나 김수경 이사·미래무역 이현숙 공동사장.[변선구 기자<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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