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한국 중소업체에 2조원 투자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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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요즘 패션업계에선 ‘오렌지 팩토리’가 화제다. 이 업체는 주류 패션업체 입장에서 보자면 저 먼 변방의 의류 유통업체다. 유명 브랜드의 2년 차를 넘긴 재고를 팔면서 업계에 등장한 후 지금은 ‘트래드클럽’ ‘아라모드’ ‘드레스투킬’ 등 흘러간 브랜드 상표권을 사들여 옷을 만들어 파는 연 매출 2500억원 정도의 중소 유통업체이니 말이다.

 한데 최근 이 기업에 중국 국부펀드 신다그룹이 2조원 투자를 발표하면서 이목이 쏠렸다. 1차 투자금만 1800억원이다. 5년 안에 중국에 매장 300개를 연다는 조건이다. 오렌지 팩토리 상표 로열티(5%)도 받고, 점포 디자인과 상품 구성부터 판매 방식까지 도맡는다. 그렇다 보니 국내 패션 대기업 패스트패션(SPA) 브랜드들을 제치고 ‘오렌지 팩토리’가 한국판 ‘자라(ZARA)’가 될 기반을 마련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회사 전상용 사장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중국에서 투자하겠다고 찾아왔다”고 했다. 몇 년 전 중국의 공무원들이 워커힐 인근 매장에서 쇼핑을 한 뒤 투자처로 찍었다더라고도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단다. 다만 중국 측에선 의류 유통뿐 아니라 성형외과·뷰티·음식 등 한류 라이프 스타일을 종합 전개해달라고 한단다.

 왜 오렌지 팩토리였을까. 국내엔 패션 대기업들의 SPA 브랜드들이 넘치는데 말이다. 들여다보면 오렌지 팩토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독특하다. 대부분 SPA 브랜드는 한 개의 브랜드에 자신들의 콘셉트로 상품을 만들어 판다. 한데 이곳은 각종 흘러간 브랜드로 그에 맞는 디자인 콘셉트의 상품을 전개하고, 게다가 다른 유명 브랜드의 재고품까지 모아 ‘오렌지 팩토리’라는 매장 안에서 판다. 전 사장은 “30년 동안 옷 장사만 하면서 잘 팔리는 방식으로 팔다 보니 이런 모델이 나왔다”고 했다. 기획력이 아닌 현장의 승리라는 것이다. 눈 밝은 중국이 이를 알아본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인 투자은행 대표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브랜드 라이선스, 노하우, 비즈니스 모델을 사고 싶다.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은 중국에선 잘 팔리는 상품”이라고 했다. 소재·부품이나 공장 투자 같은 건 관심이 없다. 내수를 통한 경제 발전으로 돌아선 중국은 이제 자기네 시장에다 팔 물건을 쇼핑하러 다닌다. ‘한류 라이프 스타일’ 산업은 그들이 열광하는 품목이다.

 업계 관계자들도 “요즘 중국의 투자 문의가 많다”고 했다. 실은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K-뷰티, K-패션은 관심거리란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뉴욕 패션 시장에서도 서울을 ‘아시아의 파리’라고 할 만큼 동양권의 트렌드 세터로 본다. 상품 기획, 제품 개발, 유통 기술 등 기반 기술도 강력하다”고 말한다.

 한데 입질은 무성한데 수출 혹은 투자 성과로 이어지는 건 미미하다. 왜? ‘마케팅’을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에겐 이런 브랜드와 상품이 있고, 당신네 나라에선 이렇게 팔 수 있다’거나 ‘업체 간 협력 등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제시하면서 고객을 끌어야 하는데 그럴 실력이 없다는 것이다. ‘구슬은 많은데 꿰지 못한다’는 한탄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업계에선 이런 비효율의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지원 정책이 아직도 구슬 다듬는 단계여서’라고 꼽는다. 여전히 섬유 소재 개발, 트렌드 조사 같은 ‘기반 구축’에서만 맴돈다. 세계 시장에 상품을 들고나가 홍보하고 알려야 할 순간인데도 정부는 옛날부터 하던 일에만 돈을 쓴다는 거다.

 수출 규모가 확 줄었다. 물량보다 가격이 확 떨어졌다. 세계 시장은 내수 소비 증진에서 경제 발전 동력을 찾고 있어 기존의 원 부자재 대량 수출로는 한계에 부닥쳤다. 이젠 수출도 다른 나라 내수시장에 끼어들어야 한다. 업계에선 한류 붐은 ‘길어야 3년’이라며 그전에 현지 시장에 정착해야 한다고 본다. 정책도 ‘기반 구축 보고서’에서 벗어나 ‘세일즈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