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빛보는 광다회|전통 수공예전서 최고상탄 김점아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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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마 1천번은 더 다시 했을거우. 오래전에 해본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이리하면 될성 싶다가 또 안되구, 저리해도 또 안되구…. 화가 나서 저만치 내동댕이쳤다가 그래도 못잊어 이내 집어들곤 했어라우.』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50여년 전의 흐린 기억을 한올씩 더듬어가며 광다회를 재생, 제3회 전국 할아버지 할머니 전통 수공예작품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김점아할머니 (전남여천군율촌면 평산리1050)-. 그의 끈질긴 집념이 아니었던들 30년전에 맥이 끊어져 버린 광다회는 영영그 기법을 「신비」 속에 감춘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광다회란 간단히 말해 실로 짜는 끈을 가리킨다. 끈을 만드는 것을 「다회(다회)친다」고 했는데, 끈 목의 둘레는 둥근 동다회와 납작한 광다회가 쌍벽을 이뤘다.
이중 노리개·주머니끈·유소등을 맺기위해 쓰였던 동다회는 김희진씨 (무형문화재 매듭기능장) 등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으나 도포의 허리띠 등으로 쓰였던 광다회는 한복을 입는이가 줄어들고 기계화된 끈들이 많아짐에 따라 자연히 소멸해 버렸었다.
김할머니가 광다회 재현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제3회 전국 할아버지 할머니 전통 수공예작품전 (숭례원·KBS공동주최) 이 계기.
2회째인 작년에 처음 출품, 어린이 도포로 장려상을 수상했던 김할머니는 올해는 기어이 최고상을 따내겠다고 단단히 별러왔다. 고을에서 으뜸가는 바느질꾼인 그로서는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농사일이 한가로운 겨울 석달동안 그는 부지런히 길쌈을 지었다. 작년과는 달리 염색할 궁리도 했다. 산을 돌아다니며 소나무 껍질을 벗겨와 절구통에 찧어 삶아낸 물로 염색해보기를 네차례.
물에 잠겨 있을 땐 고운빛이 널기만 하면 모조리 빠져나가는 통에 실패를 거듭했다. 주위의 권고로 백반을 더해 시도해본 5번째 드디어 성공, 고운빛은 날렵한 그의 바느질 솜씨에 빛을 더해 누가 봐도 감탄할 명주바지 저고리가 됐다.
그런데도 김할머니는 뭔가 자꾸 부족하게만 여겨졌다, 며칠을 궁리한 끝에 한복이니까 허리끈을 매주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떻게 만들까가 또 문제였다.
광양에서 살 당시 몇 번 해보았던 광다회의 기억이 희미하게 스쳐 치나갔다.
그러나 55년전의 기억을 되살리기란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실바디(베틀)를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잠잘때나 잊어버릴까, 늘상 머리속으로 그 생각 뿐 이었응게. 동네사람들은 괜한 고생을 사서 한다하고 손주들까지도 아기나 봐주지 그건 해서 뭣하느냐고 물었어라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 조각씩 끼워 맞추면 기억의 편린이 드디어 실바디를 재현해냈을 때 그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젠 손에 딱 올라있으니께 절대 안잊어부러. 젊은 사람들 힘들다고 안배울라 할 테지만 세째 며느리(김순희씨) 가 다행히 내뜻을 따라주니 고맙소.』<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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