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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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씨름오심판정 무효소송-. 스포츠나 법조사상 희귀한 사례라서 어안이 벙벙할 판이다.
며칠 전 끝난 제4회 천하장사 씨름대회의 부산물이다. 부산물 치곤 달갑지 않은 게 분명하지만 소송으로라도 밝혀야할 일이라면 의당 철저히 가려야겠다.
다만 씨름판이 그런 불쾌한 부산물을 아예 만들지 않아야겠고, 또 말썽이 생기더라도 1차 적으로 자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썽의 발단은 오심. 심판의 판정이 늘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과는 거리가 먼 판정의 여운은 의외로 심각하다.
부정확한 판정은 그 게임만 망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천하장사 씨름의 불신을 낳고 비로소 소생할 기미를 띠고 있는 민속경기「씨름」에 재를 뿌리며 크게는 나라의 기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판정은 단지 피해당사자인 씨름선수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다. 그 덕으로 승리한 선수에게도 돌아간다. 떳떳치 않은 승리가 결코 명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정으로 천하장사가 되고 1천5백만원이란 거금을 얻었다고 해도 자랑은 아니다.
승리는 훔쳐져서는 안되고 거저 떨어진걸 주워서 가질 수도 없다. 진정한 천하장사는 천하가 인정하는 장사여야 한다. 선수들이 인정하고, 심판들이 확인하고, 관중과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야한다. 어린이가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면 그건 문제다.
규칙을 어겨가며 승리할 수는 있다. 심판의 편파적 판정이 승리를 제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의 마당은 「하늘아래」관중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떳떳한 승리자만이 관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꺼져 가는 박수, 어설픈 박수가 아니라 마음의 박수와 환호는 아주 중요하다.
천하장사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하늘아래」장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 없는 승리자, 인정받는 승리자만이 그런 이름에 걸 맞는 사람이다. 씨름 판정 시비가 법정에서 어떻게 귀결될 진 알 수 없다. 법정의 「판정」이 문제를 완전 해소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판정은 공정하고, 규칙은 바르며, 선수들은 모두 훌륭해서 국민이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씨름판이 되고 사회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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