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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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의 길 이름 2백4개가 제정되어 그 작명이 공청회에 붙여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길 이름 붙이기는 사소한 일 같지만 결코 그런게 아니다. 시민생활과 밀접한 것부터 처리하는게 행정의 기본이라고 할만하다.
2백44개 가로이름 중엔 1백60개의 기존 가로 이름도 있다. 52개는 고쳐지고, 27개는 길이가 조절됐다. 새로 정해진 것은 72개.
서울은 한때 거리 이름을 가진 것이 종로 하나 뿐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 점에선 2백44개의 가로이름을 붙여야 하는 지금은 격세의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규모가 비슷한 외국 도시에 비하면 아직 까마득한 단계다.
파리 시는 5천3백개의 도로가 있다. 가장 긴 불바르 보지라트는 4천3백60m, 가장 작은 거리는 60m밖에 안 되는 파사주 드 라 뒤레다. 거미줄 같은 도로망에 모두 신통하게 이름이 붙어 있다.
파리의 길 이름은 18세기 「루이」 14세때 9백여개나 됐다. 대개 그 지역과 관계있는 사람의 이름들이 쓰여졌다.
새로 정해지는 서울의 가로 이름에 역사적 인물이 여기저기 첨가된 것은 다행스럽다.
66년 가로 이름짓기가 시작되고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가로이름에 등장한 인물은 겨우 아홉명.
이제 추사·우암·대건·소파·소월·무학·낙서·화산·토정·양령에 백범·하정·삼학사까지 등장하게된 것은 미흡한대로 큰 발전이다.
역사적 인물과 함께 역사 사실에 연유한 가로명도 나왔다.
남1로, 남4로 등 멋없던 이름을 언주로, 선릉로로 바꾸고 낙성대로, 헌릉로가 나왔다.
그 중엔 시민의 입에도 익고 아름다운 이름도 있다. 곶평로가 뚝섬길로, 흥남로가 모래내 길로 바뀐 것과 노들길, 곰달래 길이 새로 나온 것.
그러나 아직 미흡한 것, 거슬리는 것이 또 있다. 「광로」 「대로」하는 풍조다. 큰 도폭을 기준 했다지만 괜한 허풍이다. 엄청나게 큰 외국의 도로들도 꼭 「그랜드」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규모면에서 결코 「대교」가 아닌데 「대교」라고 붙이는 과장벽은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그랜드」 운운한 영어 표기를 정작 외국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남의 나라 수도이름을 딴 테헤란로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뚱딴지같다.
아름답고 익히기도 쉬운 거리이름이 관광객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작은 골목길에도 좋은 이름을 붙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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