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행복어사전] 한눈팔이 남자와 아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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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34면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눈을 팔았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로 딴 곳을 보더라고, 그래서 서운했다고 가끔 남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이 원피스 어때요?”

아내가 가리키는 잡지 속 여자는 예뻤다. 모델이라 그런지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었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보석처럼 빛났다.

“예쁘네.”

“그렇지? 이런 연두색은 잘 없는데. 진짜 예쁘다.”

“그래. 미인이네.”

“아니 누가 여자를 보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원피스 말이야, 원피스.”

“원피스를 그 여자가 입고 있으니까.”

“뭐야, 그러니까 이 여자니까 어울리고 나한테는 이 원피스가 안 어울릴 거라는 말이야?”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남자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옷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걸. 옷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여자들은 사람보다 옷이 먼저 보이는 건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차, 말을 말았어야 하는데. 여자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낭패를 본다. 잘해야 본전이다. 일요일 오후의 평화가 아슬아슬하다. 이제 곧 아내의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이 길게 이어질 것이다. 남자가 아내에게 잘못한 역사만큼 길게. 남자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커피숍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들이 나온 젊은 여자들이 잡지 속 모델처럼 예쁘다.

“어딜 봐? 당신 또 한눈파는구나. 정말 당신은….”

아내는 무슨 말인가를 계속 하고 있지만 남자에게는 음소거 상태가 된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눈을 팔았다. 남자의 인생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마 ‘한눈판 남자’가 될 것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남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것이 ADHD로 불리는 장애인지 몰랐다. 학교 다닐 때 남자가 받은 모든 통신표에는 항상 ‘주의가 산만한 아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남자의 버릇은 자라면서 더 심해졌다. 한곳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보다 말이, 말보다 행동이 먼저 부산스럽게 뛰어다녔다.

한눈팔이 소년은 한눈팔이 학생으로 학교를 다녔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한눈팔이 회사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했다. 연애할 때는 한눈에 반한 여자를 만났지만 틈만 나면 한눈을 파는 한눈팔이 애인이 되어 시종일관 여자의 속을 썩였다. 결혼식장에 신랑으로 입장할 때도 한눈을 판 남자는 한눈팔이 남편이 되어 주례 선생의 당부대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변함없이, 이렇게 일요일 오후 아내와 커피숍에 앉아서도 부지런히 한눈을 팔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생각한다. 남자의 한눈이야 철없고 나쁘고 한심한 것이지만 모든 한눈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눈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한눈의 사전적 정의는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이다. 마땅히 볼 데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딴 데를 보면 왜 안 되는가? 달을 가리킬 때 왜 손가락을 보면 안 되는가? 가리키는 달이 진짜 달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아야 한다. 손가락의 주인을 보아야 한다. 손가락 주인이 서있는 곳, 그 처지와 입장을 살펴야 한다. 무조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만 보아서는 달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 아닐까?

‘주변시’ 역시 한눈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야간 경계를 할 때 한 곳만 계속 바라보면 대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보인다. 심지어 나무가 연두색 원피스 입은 여자로도 보인다. 자주 한눈을 팔아야 한다. 주변이 어두울수록 환경을 살피면서 대상을 보아야 좀더 정확하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대상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딜 자꾸 보는 거야?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이 원피스를 좀 보라고.”

남자는 아내를 본다. 남자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잡지 속 모델이 아닌 실재의 여자. 한눈팔이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을 많이 한 여자. 화를 낼 때도 얼굴에 눈웃음이 보석처럼 빛나는 여자. 그리고 연두색 원피스가 아닌 검정색 셔츠를 입은 여자.

남자는 생각한다. 내가 달을 본 거지. 손가락을 보았으면, 손가락의 주인인 당신을 보았으면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못했겠지.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 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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