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유리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소년은 거의 날마다 전당포를 찾았다. 키보다 곱절은 높은 전당포 창구에 매달려 옷가지 등을 내밀고 돈을 받았다. 약값 마련이었다. 집에 오면 돌팔이였던 동네 의원을 믿고, '귀뚜라미 한 쌍' '3년 서리 맞은 사탕수수' 등과 같은 약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배움을 찾아 외지로 나선 소년은 홑바지로 겨울을 나야 했다. 돈이 없던 그로선 추위를 이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생각해낸 게 매운 고추였다. 고추를 먹는 순간엔 잠시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엔 그게 버릇이 됐고, 끝내는 위를 해치게 됐다.

소년은 루쉰(魯迅.1881~1936)이다. 펜 하나로 중국을 일깨운 인물이다. 처음엔 의학을 배워 아픈 이를 도우려다 중국인의 영혼 개조가 더 시급하다고 보고 문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시작 당시엔 무력감이 컸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열변을 토했다고 해서 사람을 구름처럼 모이게 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은 아니다." 적막감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벗 첸셴퉁(錢玄同)이 찾아와 잡지 '신청년'에 글쓰기를 권했다. 이에 루쉰이 말했다. "가령 무쇠로 지은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무너뜨리기도 어렵고. 그 안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면 숨이 막혀 죽을 게 아닌가. 그러나 잠을 자다가 죽으니 고통을 느낄 수는 없을 걸세. 그런데 자네가 소리쳐 깨운다면 그들은 고통 속에 죽을 것이 아닌가."

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닐세. 몇몇 사람이 깨어났으니 그 무쇠방을 무너뜨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네." 이는 루쉰이 그의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게 된 계기다. 1918년의 일이다. 루쉰은 '미친 자'의 입을 빌려 수천 년 지속돼 온 중국의 봉건제도를 사람 잡아먹는 사회라고 질타했다. 무쇠방은 봉건제도였다.

지난주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대회 주제가 '유리병'의 가사는 루쉰과 첸셴퉁이 나눈 무쇠방 이야기에서 따왔다. "커다란 유리병 속에 갇힌 사람들 있죠/ … 깰 수 없는 유리는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어/ 한두 사람이라도 눈을 뜬 사람 있다면/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 갇힌 그들을 꺼내야 해요 …." 북한 체제를 '깨지기 쉬운' 유리병에 비유했다.

20세기 루쉰의 외침을 21세기 서울에서 듣는 것 같다. 안타까운 한반도의 자화상이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