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거의 날마다 전당포를 찾았다. 키보다 곱절은 높은 전당포 창구에 매달려 옷가지 등을 내밀고 돈을 받았다. 약값 마련이었다. 집에 오면 돌팔이였던 동네 의원을 믿고, '귀뚜라미 한 쌍' '3년 서리 맞은 사탕수수' 등과 같은 약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배움을 찾아 외지로 나선 소년은 홑바지로 겨울을 나야 했다. 돈이 없던 그로선 추위를 이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생각해낸 게 매운 고추였다. 고추를 먹는 순간엔 잠시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엔 그게 버릇이 됐고, 끝내는 위를 해치게 됐다.
소년은 루쉰(魯迅.1881~1936)이다. 펜 하나로 중국을 일깨운 인물이다. 처음엔 의학을 배워 아픈 이를 도우려다 중국인의 영혼 개조가 더 시급하다고 보고 문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시작 당시엔 무력감이 컸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열변을 토했다고 해서 사람을 구름처럼 모이게 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은 아니다." 적막감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벗 첸셴퉁(錢玄同)이 찾아와 잡지 '신청년'에 글쓰기를 권했다. 이에 루쉰이 말했다. "가령 무쇠로 지은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무너뜨리기도 어렵고. 그 안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면 숨이 막혀 죽을 게 아닌가. 그러나 잠을 자다가 죽으니 고통을 느낄 수는 없을 걸세. 그런데 자네가 소리쳐 깨운다면 그들은 고통 속에 죽을 것이 아닌가."
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닐세. 몇몇 사람이 깨어났으니 그 무쇠방을 무너뜨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네." 이는 루쉰이 그의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게 된 계기다. 1918년의 일이다. 루쉰은 '미친 자'의 입을 빌려 수천 년 지속돼 온 중국의 봉건제도를 사람 잡아먹는 사회라고 질타했다. 무쇠방은 봉건제도였다.
지난주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대회 주제가 '유리병'의 가사는 루쉰과 첸셴퉁이 나눈 무쇠방 이야기에서 따왔다. "커다란 유리병 속에 갇힌 사람들 있죠/ … 깰 수 없는 유리는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어/ 한두 사람이라도 눈을 뜬 사람 있다면/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 갇힌 그들을 꺼내야 해요 …." 북한 체제를 '깨지기 쉬운' 유리병에 비유했다.
20세기 루쉰의 외침을 21세기 서울에서 듣는 것 같다. 안타까운 한반도의 자화상이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