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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과 박연차의 같고도 다른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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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지난달 19일 기자의 휴대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의 전격 압수수색 하루 뒤였다.

 “부장님. 저 성완종입니다. 조 부장님. 바쁘시죠. 제가 부장님 한 번도 안 봬 가지고….”

 (저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저도 충청도입니다.)

 “어디 조씨입니까.” (한양입니다.) “아, 창녕 조씨가 우리 (창녕) 성가랑 그런 관계가 돼서…. 부장님, 제가 나중에 뵙고 소주 한잔 대접할 거고. 지금 보도 나오는 거 그게 전혀 아니거든요. 자원 관계는. 내일 보도자료 내려고 하는데 좋은 기자 좀 소개해 주십시오. 자꾸 ‘MB맨’이라고 그래서. 검찰에서 나오는 건지, 야당에서 나오는 건지, 누가 장난하는 건지는 모르는데….”

 (직접 나오시나요?) "제가 나서는 건 좀…. 검찰의 입장 곤란하게 하면 안 되니까.”

 전화를 끊고 참 억울하고 다급한가 보다, 생각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중견기업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다니.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3주가 흐른 지난 9일 오전. 방송 자막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잠적’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떴다. 오후에 혹시, 혹시 하다가 일단 전화를 걸어봤다. 뚜뚜뚜~ 신호가 갔다. 기다렸다. 응답은 끝내 없었다. 법조 출입 기자를 하면서 지켜본 여러 죽음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2003년 대북송금 및 현대비자금 사건 수사 도중 투신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한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2009년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투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와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발신 시각은 오후 1시23분. ‘회장님! 진실은 밝혀집니다. 극단의 선택은 절대 안 됩니다”라는 단문이었다.

 두 시간여 뒤 성 전 회장은 북한산 형제봉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자에게 ‘성완종’ 이름 석 자는 귀에 익숙했다.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기자에게 그는 어렸을 적 봤던 만화영화 속 ‘아수라 백작’ 이미지가 강했다. 기업인과 정치인이라는 두 개의 반쪽 얼굴을 갖고 사는 사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 천신만고 끝에 부를 일궜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기업 경영은 제쳐 두고 국회 문을 두드린 지 20여 년 만에 금배지를 달 만큼 권력욕구는 집요했다.

 그는 게이트의 주역이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유사 상황에 처했으나 택한 길은 달랐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 등과 어울리며 물질적 지원은 했지만 기업인으로서였다. 성 전 회장은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검찰에서 로비 사실을 털어놓은 박 회장은 자기도 살고 기업도 살렸다. 성 전 회장은 정반대로, ‘메모 살생부’만 남긴 채 숨졌다.

 평소 ‘충청권 대망론’을 펼친 성 전 회장, 그는 ‘노무현을 꿈꿨던 박연차’ 아니었을까.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