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남북 관계 개선이 돌파구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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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박근혜 정부는 5년 내내 다큐멘터리를 보여줄 것이다. 다만 드라마가 하나 있다면 남북 관계 개선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에 근무했던 지인이 한 말이다. 그의 예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맞아 가는 것 같다. 지난 2년 넘게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다큐멘터리였다. 안으로는 창조경제·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밖으로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동북아개발은행 등 시작은 떠들썩했지만 국민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다소 추상적이고 지루하며 많은 설명이 필요한 내용들이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있었다. 그 결과 국내외적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다. 창조경제·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안간힘을 쓰는데도 지난해 2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에 머물렀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동북아개발은행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래서 ‘성완종 사건’ 이후 대통령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에는 청와대가 국민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국민이 청와대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인지 정치권 안팎에서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로 남북 관계 개선을 꼽는 사람이 많다. 남은 임기 동안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고 주변 4강 외교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바쁜데 한국의 바람만큼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들에게는 남의 일이다. 한국이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공간을 만들어 놓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지금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남북 관계를 푸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2014년 9월 뉴욕에서 언급한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다. 고르디우스 매듭은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 왕의 전차에 매달린 매듭을 아무도 풀지 못하자 한칼에 잘랐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남북 관계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듯이 박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풀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가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보고할 수 있다. 과거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경우는 많았다.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이 자신들의 철학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서로는 지난 1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이미 보여주었다.

 최근에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잠정 타결했다. 난항을 겪던 협상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직통 전화였다. 양국 정상 간 통화는 34년 만이다. 국익을 위한 용기였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지난주에 끝났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지금이 기회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감동적인 드라마를 선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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